
LA에 가면 늘 바다부터 떠올렸는데, 이번에는 동네를 걷는 시간을 길게 잡았다. 하이랜드파크를 고른 이유도 거창하지 않았다. A라인 역에서 내려 큰길을 따라 걷다가 마음에 드는 골목으로 들어갈 수 있는 동네였기 때문이다. 목적지를 몇 군데 찍어 두고 서두르는 대신, 반나절쯤 천천히 걸어 보기로 했다.
하이랜드파크역에서 걸음을 늦췄다
LA 메트로 A라인 하이랜드파크역에서 내려 피게로아 스트리트 쪽으로 향했다. 역 주변은 주택가와 가게가 가까이 붙어 있어 금방 동네 안으로 들어온 느낌이 난다. 차가 많은 큰길에서는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려야 했지만, 한 블록 옆으로 들어서면 걷는 속도를 늦추기 좋았다.
이곳을 ‘사람 없는 LA’라고 부르면 조금 과장이다. 피게로아와 요크 불러바드에는 식당과 상점이 이어지고, 저녁이면 더 활기가 돈다. 그래도 평일 낮 주택가 골목은 유명 관광지 앞에서 느끼는 북적임과 거리가 있었다. 낮은 집과 현관 앞 나무를 구경하며 걷다 보면 사진을 찍는 일보다 어느 길로 돌아갈지 고르는 일이 더 재미있어진다.
피게로아에서 요크까지 이어 걷기
처음부터 조용한 골목만 찾을 필요는 없다. 피게로아를 기준으로 방향을 잡고, 마음에 드는 옆길을 한두 블록 걸은 뒤 다시 큰길로 나오면 길을 잃을 부담이 적다. 요크 불러바드와 만나는 쪽으로 걸어가면 가게 구경과 동네 산책을 자연스럽게 섞을 수 있다. LA 관광 안내에서도 두 거리를 하이랜드파크의 걸어 다니기 좋은 상점 구역으로 소개한다.
걸으면서 좋았던 건 볼거리가 계속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가게 앞에서는 잠깐 멈추고, 별다른 표지가 없는 구간에서는 그냥 걸었다. 관광 일정이라면 빈 시간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생활하는 동네를 보러 왔다면 그 사이가 오히려 오래 남는다. 카페 한 곳에 들어가 쉬었다가 같은 길을 반대 방향으로 걸어도 풍경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요크 쪽까지 걷는 데는 길을 어떻게 고르느냐에 따라 시간이 달라진다. 나는 역으로 돌아갈 시간까지 넉넉히 두고 움직이는 편이 좋았다. 작은 가게는 영업일과 시간이 제각각이라 특정한 한 곳을 여행의 중심에 놓으면 산책이 급해지기 쉽다. 문이 닫혀 있으면 다음 블록으로 걸어가면 되는 동네다.
조용한 골목에도 생활의 선이 있다
주택가가 한적하다고 해서 마음껏 들여다봐도 되는 공간은 아니다. 집 앞 계단이나 차고 입구에 오래 서 있지 않고, 사진은 사람과 집 내부가 나오지 않게 찍었다. 골목에서 마주치는 사람에게는 길을 비켜 주고, 조용한 길에서는 목소리도 낮췄다. 이런 작은 거리감이 있어야 동네 여행이 서로에게 편하다.
걷기 전에 알아둘 점도 있다. LA의 동네 길은 햇볕을 피할 곳이 일정하지 않고, 같은 구역에서도 완만한 오르막을 만날 수 있다. 물과 편한 신발을 챙기면 가게를 찾아 급하게 움직일 일이 줄어든다. 큰 도로를 건널 때는 가까워 보여도 횡단보도를 이용하는 편이 낫다. 해가 진 뒤 처음 보는 골목을 계속 탐색하기보다는, 낮에 걸었던 길을 따라 역으로 돌아오는 동선이 마음도 편했다.
반나절을 비워 두니 보인 것들
하이랜드파크는 숨겨진 비밀 장소라기보다 사람들이 사는 동네다. 요크와 피게로아에는 들를 만한 곳이 있고, 그 사이에는 특별한 설명 없이 지나가도 좋은 길이 있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가게 이름을 몇 개 외우는 것보다 걷는 시간을 비워 두는 편이 좋았다.
LA 여행에 하루를 더 쓸 수 있다면, 그중 반나절은 이런 동네에 놓아두고 싶다. 돌아와서 떠오르는 건 유명한 간판보다 역에서 골목으로 들어설 때 조금 느려졌던 걸음이다. 일상에 가까운 여행은 때로 그 정도의 장면으로도 충분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