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오일을 갈러 갔다가 직원에게 “주행거리가 좀 있으니 5W-40이 낫지 않겠냐”는 말을 들었다. 순간 혹했다. 숫자가 큰 오일이 오래된 엔진을 더 잘 지켜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집에 와서 차량 설명서를 펼쳐보니, 제일 먼저 봐야 할 건 주행거리보다 내 차 엔진에 지정된 점도였다. 운전 14년째인데도 오일 통 숫자 앞에서는 가끔 자신감이 과해진다.
0W-20과 5W-30, 숫자는 이렇게 읽는다
엔진오일 점도 선택하는법을 찾다 보면 숫자 설명부터 복잡하게 나온다. 간단히 말하면 앞의 0W나 5W는 추울 때 오일이 흐르는 성질을 나타내는 등급이다. W는 겨울을 뜻한다. 같은 뒤 숫자라면 0W가 5W보다 낮은 온도에서 흐르는 기준을 충족한다. 뒤의 20이나 30은 엔진이 뜨거워졌을 때의 점도 등급이다. 같은 조건에서 30이 20보다 더 높은 점도 범위에 속한다.
여기서 헷갈리기 쉬운 게 있다. 0W-20의 20은 ‘20도까지 쓸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5W-30의 30도 여름 기온 30도를 가리키지 않는다. 나도 처음에는 여름이면 무조건 뒤 숫자를 올려야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요즘 차 중에는 0W-20을 연중 지정하는 경우도 있다. 현대자동차 사용 설명서에도 엔진별 권장 점도와 외기온도 범위가 따로 나온다.
내 차 설명서에서 볼 것은 점도만이 아니다
가장 확실한 순서는 차종, 연식, 엔진 종류를 확인한 뒤 해당 차량의 사용 설명서에서 ‘추천 오일 및 용량’을 찾는 것이다. 같은 차 이름이라도 가솔린과 디젤, 엔진 세대에 따라 요구 사항이 다를 수 있다. 인터넷에서 “이 차는 5W-30”이라는 글 한 줄을 보고 주문했다가 엔진 형식이 다른 걸 뒤늦게 발견하면 귀찮아진다.
설명서에 0W-20이라고 적혀 있다면 오일 통 앞면의 점도만 맞추고 끝내지 말자. API, ILSAC, ACEA 같은 품질 규격도 함께 확인해야 한다. 현대자동차 역시 점도 분류와 품질 등급을 동시에 만족하는 오일을 쓰도록 안내한다. 특히 디젤차는 배출가스 장치에 맞는 규격까지 살펴야 하니, 가솔린차에 썼던 오일을 남았다는 이유로 그대로 고르면 곤란하다.
나는 교환할 때 설명서의 권장 사양을 휴대전화로 찍어 간다. 정비소에서 제품을 추천받으면 통에 적힌 점도와 규격을 그 사진과 대조한다. 브랜드 이름이나 ‘고급 합성유’라는 문구보다 이 두 항목이 먼저다. 한 번 찍어 두면 다음 교환 때도 편하다.
겨울과 여름마다 점도를 바꿔야 할까
계절이 바뀌면 오일도 갈아입혀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실제로는 설명서가 허용하는 점도와 온도 범위부터 보는 게 순서다. 설명서가 한 점도를 연중 권장한다면 달력만 보고 바꿀 이유는 없다. 여러 점도를 허용한다면 거주 지역의 겨울 기온과 평소 운행 환경을 함께 볼 수 있다. 이때도 허용 목록 밖의 제품을 임의로 고르지는 않는 편이 안전하다.
주행거리가 늘었다고 무조건 더 끈적한 오일을 넣는 것도 조심스럽다. 오일이 줄거나 엔진 소리가 커졌다면 누유, 소모량, 정비 상태부터 확인해야 한다. 점도를 바꾸는 것만으로 원인이 해결됐다고 생각하면 점검 시기를 놓칠 수 있다. 내 차도 어느 날 오일량이 예상보다 낮아 놀란 적이 있는데, 그 뒤로는 교환 날짜만 기억하지 않고 중간에 오일량을 확인한다.
정비소에서 주문하기 전 이렇게 확인한다
내가 쓰는 메모는 짧다. ‘차종·연식·엔진 형식, 설명서의 점도, 품질 규격, 교환 용량’ 네 가지다. 오일을 직접 사 갈 때는 제품 용기에 적힌 사양을 대조하고, 정비소에 맡길 때는 넣을 제품명을 먼저 묻는다. 같은 5W-30이라도 모든 엔진에 맞는 제품은 아니기 때문이다.
- 설명서의 권장 점도와 허용 온도 범위를 확인한다.
- 오일 용기의 API·ILSAC·ACEA 등 요구 규격을 대조한다.
- 교환 후에는 실제 주입량과 오일량 표시를 확인한다.
교환 주기도 같이 봐두면 좋다. 짧은 거리만 반복하거나 정체 구간을 자주 다니는 운전은 설명서의 가혹 조건에 해당할 수 있다. 집에서 직장까지 몇 킬로미터 안 되는 길만 오가던 때에는 연간 주행거리가 적어서 마음이 놓였는데, 교환 기준은 거리 숫자 하나로 끝나지 않았다.
오일을 고를 때마다 나는 ‘더 비싼 것’이나 ‘더 두꺼운 것’보다 ‘내 엔진에 맞는 것’을 먼저 찾는다. 설명서 사진 한 장과 오일 통의 규격 표시만 맞춰 봐도 정비소에서 고개만 끄덕이다 나오는 일은 꽤 줄어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