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물도에서 배를 기다리다 보면 풍경보다 시계를 더 자주 보게 된다. 장군봉에서 바다가 아무리 좋아도 돌아가는 배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통영 매물도 여행은 걷고 싶은 길을 고르기 전에 들어갈 선착장과 나올 선착장부터 정해야 편하다.
배표는 당금과 대항을 구분해서 끊는다
먼저 이름부터 확인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흔히 매물도라고 부르는 곳에는 대매물도와 소매물도가 있다. 해품길을 걸으려면 대매물도의 당금마을 또는 대항마을로 가는 표를 끊어야 한다. 등대섬을 보러 가는 소매물도 표와는 목적지가 다르다.
통영 시내에서 출발한다면 통영항 여객선터미널을 이용한다. 거제 남부에 머문다면 저구항 출발편도 살펴볼 만하다. 통영항에서는 비진도 등을 거쳐 가는 항차가 있어 대매물도까지 대략 1시간에서 1시간 30분을 잡는다. 들르는 순서와 도착 시간은 항차마다 다르다. 예약 화면에서 날짜를 넣고 ‘대매물도 당금’과 ‘대매물도 대항’을 각각 확인하는 게 정확하다.
내가 당일치기 동선을 짤 때는 당금으로 들어가 대항에서 나오는 배편을 먼저 맞춘다. 해품길이 두 마을을 잇기 때문이다. 다만 들어가는 배만 예약하고 현장에서 돌아올 표를 구하려고 하면 주말에는 난감해질 수 있다. 왕복 좌석을 먼저 확보하고, 귀항편이 어느 선착장에 서는지 확인한다. 신분증도 챙겨야 한다. 운항 시각과 요금은 계절과 날씨, 선사 사정에 따라 바뀌므로 출발 전날과 당일 아침 한솔해운이나 여객선 예매 화면에서 다시 확인하는 편이 안전하다.
성수기에는 원하는 시간대 좌석이 먼저 빠지는 일이 문제이고, 비수기에는 숙소와 식당의 운영 여부까지 확인해야 한다. 바람이 강하면 맑은 날에도 배가 끊길 수 있다. 돌아온 날 저녁에 꼭 참석해야 할 일정이 있다면 섬에서 마지막 배를 타는 계획은 피하는 게 좋다.
당금에서 장군봉을 넘어 대항으로 걷는다
당금 선착장에 내리면 마을 위쪽으로 올라 폐교인 매물도분교 방향을 잡는다. 여기서부터 동백나무가 섞인 숲길과 바다가 보이는 능선이 번갈아 나온다. 홍도전망대를 지나 장군봉에 올랐다가 꼬들개를 거쳐 대항마을로 내려가는 해품길은 약 5.2㎞다. 한국관광공사는 전체 코스를 약 4시간으로 안내한다. 사진을 찍고 쉬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그보다 넉넉하게 잡는 게 맞다.
장군봉은 해발 210m로 높이만 보면 가볍게 느껴진다. 그런데 선착장에서 바로 걷기 시작하면 계단과 흙길 오르막이 생각보다 꾸준하다. 정상에서는 소매물도와 등대섬이 나란히 보인다. 그 풍경을 보고 등대섬까지 걸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대매물도와 소매물도 사이에는 바다가 있다. 두 섬을 같은 날 묶으려면 별도 배편과 충분한 환승 시간을 확인해야 한다.
대항으로 내려가는 길에서는 바다 쪽으로 열린 구간이 이어진다. 꼬들개를 지나 마을로 들어서기 전에는 오래된 후박나무도 만난다. 다만 비가 온 뒤 흙길과 나무 계단은 미끄럽다. 운동화보다는 밑창이 단단한 걷기 신발이 낫고, 한여름에는 그늘 없는 구간에서 물이 빨리 줄어든다. 물과 간단한 점심은 통영에서 준비해 들어가는 쪽이 마음 편하다.
시간이 짧으면 두 마을 사이만 걷는다
당금과 대항은 마을 사이 고갯길로도 이어진다. 한국관광공사 안내에는 두 마을 사이가 1㎞ 남짓으로 나온다. 해품길 전체를 돌 시간이 모자라거나 오르막에 부담이 있다면 이 길로 넘어가도 된다. 당금마을 전망대에 올랐다가 대항 쪽으로 걷고, 배 타기 전 선착장에서 쉬는 일정이다.
솔직히 장군봉을 빼면 매물도까지 온 보람이 덜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걷기보다 마을과 바다를 천천히 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4시간짜리 산길을 억지로 넣을 이유가 없다. 특히 귀항까지 남은 시간이 두세 시간이라면 능선 중간에서 시계를 보며 서두르는 것보다 마을길이 낫다. 섬 안 이동은 도보를 기준으로 잡고, 짐이 많거나 숙소가 멀다면 숙소 측에 이동 방법을 미리 물어보는 게 현실적이다.
하룻밤 묵을 때는 숙소 위치를 먼저 본다
대매물도에는 당금과 대항 두 마을에 민박과 펜션이 있다. 예약할 때는 방 사진보다 어느 선착장에서 얼마나 걸리는지, 식사가 가능한지, 퇴실 뒤 짐을 맡길 수 있는지를 먼저 묻는다. 섬에서는 숙소 이름만 보고 예약했다가 배에서 내린 뒤 무거운 짐을 들고 고개를 넘어야 할 수도 있다. 늦게 들어가는 배를 탄다면 저녁 식사도 미리 부탁해야 한다. 가게가 열려 있겠지 하고 들어가기에는 선택지가 적다.
하룻밤 묵으면 해품길을 배 시간에 맞춰 급히 끝낼 필요가 없다. 첫날은 마을길과 해 질 무렵 바다를 보고, 다음 날 이른 시간에 장군봉을 걷는 식이 편하다. 여름에는 낮 더위를 피할 수 있고, 봄에는 동백이 핀 구간을 천천히 볼 수 있다. 대신 비수기 숙박과 식사 운영 여부는 예약 전에 직접 확인해야 한다.
소매물도의 등대섬이 목적이라면 물때도 여행의 기준이 된다. 등대섬으로 이어지는 몽돌길은 물이 빠질 때만 드러난다. 하지만 대매물도 해품길을 걷는 날까지 물때에 억지로 맞출 필요는 없다. 매물도는 배가 허락한 시간 안에서 걷는 섬이다. 당금에서 대항까지 발로 넘어가고도 선착장에 앉아 바다를 볼 여유가 남는 일정이 내게는 가장 좋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