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전 연수를 하다 보면 트렁크에 견인고리가 들어 있는 줄도 모르는 분을 자주 만납니다. 범퍼의 작은 덮개는 본 적이 있어도 그 안에 고리를 돌려 끼운다는 사실은 처음 듣는 거죠. 그런데 고장 난 차 앞에서 급하게 배우기에는 위험이 큽니다. 견인고리는 차를 아무 데로나 끌어당기기 위한 고리가 아니라, 차량 설명서가 허용하는 상황에서 잠깐 쓰는 비상 장비입니다.
견인고리는 어디에 있고 어떻게 끼우나
탈부착식 견인고리는 보통 트렁크 바닥 아래 공구함이나 타이어 응급 처치 키트에 있습니다. 범퍼 앞쪽 또는 뒤쪽의 작은 덮개를 열면 나사 구멍이 나옵니다. 다만 차종마다 보관 위치와 덮개 여는 방향이 다르니 본인 차의 취급설명서에서 ‘견인 후크’ 항목을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현대자동차의 일부 차종 설명서는 고리를 구멍에 넣고 오른쪽으로 끝까지 돌려 체결하도록 안내합니다.
- 차를 안전한 곳에 세우고 주차 브레이크를 건 뒤 견인고리와 장착 위치를 찾습니다.
- 범퍼 덮개를 설명서에 표시된 방향으로 엽니다. 억지로 비틀면 고정 탭이 부러질 수 있습니다.
- 고리를 손으로 끝까지 돌려 단단히 체결합니다. 나사산이 비스듬히 물렸다면 빼서 다시 끼웁니다.
- 로프나 견인 장비는 지정된 견인고리에 연결합니다. 범퍼 보강재나 차량 운송용 고리에 임의로 걸지 않습니다.
차량 운송용 고리와 견인고리는 역할이 다릅니다. 기아의 취급설명서도 운송 시 차를 고정하는 고리를 견인 목적으로 쓰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겉보기에 튼튼해 보여도 당기는 방향과 하중이 다르면 파손될 수 있습니다.
고리를 달았어도 끌면 안 되는 상황
견인고리가 달렸다는 이유로 모든 고장 차를 로프로 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바퀴가 도랑이나 진흙에 깊이 빠졌을 때, 바퀴가 잠겼을 때, 변속기를 중립으로 놓거나 주차 브레이크를 해제할 수 없을 때는 견인 전문 업체에 차량 상태를 알려야 합니다. 빠진 차를 힘껏 당기면 고리나 로프가 끊어져 사람을 칠 수 있습니다. 현대자동차의 견인 안내도 이런 상황에서 비상용 고리를 이용한 무리한 견인을 피하도록 합니다.
특히 자동변속기, 전기차, 사륜구동 차량은 바퀴를 굴리며 이동할 수 있는 거리와 속도가 차종별로 다릅니다. 예를 들어 기아의 한 차종 설명서에는 자동변속기 차량을 일반 차량으로 견인할 경우 위급한 상황에서 시속 15㎞ 이내, 거리 1.5㎞ 이내로 제한한다는 안내가 있습니다. 이 숫자를 모든 차에 적용하면 안 됩니다. 현대자동차의 다른 차종은 견인 트럭에 싣거나 위치를 조정할 때의 짧은 이동만 허용하기도 합니다. 내 차 설명서의 제한을 확인할 수 없다면 견인차에 차를 모두 싣는 방식을 요청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로프로 잠깐 이동할 때 확인할 순서
일반 차량으로 견인하는 것이 차량 설명서상 허용되고 주변 교통도 안전할 때만 진행합니다. 운전자는 견인하는 차와 견인되는 차에 각각 필요합니다. 뒤차 운전자가 조향과 제동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피견인차에는 운전자 외 사람을 태우지 않는 것이 제조사 안내에 맞습니다.
- 두 운전자가 이동 거리, 경로, 출발·정지 신호를 먼저 정합니다.
- 견인되는 차의 변속기를 설명서에 따라 중립으로 놓고 주차 브레이크를 해제합니다. 조향 잠금이 걸리지 않도록 전원 상태도 확인합니다.
- 양쪽 차량의 지정된 고리에 로프를 단단히 연결합니다. 기아와 현대자동차의 일부 설명서는 로프 길이를 5m 이내로 하고 중앙에 약 30㎝ 너비의 흰 천을 달도록 안내합니다.
- 로프가 팽팽해진 상태에서 천천히 출발합니다. 급출발·급제동·급회전은 고리에 순간적인 충격을 줍니다.
여기서 5m와 흰 천은 인용한 차량 설명서의 사용 지침입니다. 모든 차량에 똑같이 적용되는 견인고리 법정 규격으로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견인되는 차는 엔진이나 전원 상태에 따라 핸들이 무거워지고 브레이크 페달도 평소보다 세게 밟아야 할 수 있습니다. 앞차 운전자는 뒤차가 즉시 멈추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 속도를 충분히 낮춰야 합니다.
고속도로에서 고장 났다면 고리보다 대피가 먼저다
고속도로와 자동차전용도로에서 차가 멈췄다면 견인고리를 찾느라 차 옆에 오래 서 있지 마세요. 비상등을 켜고 이동할 수 있으면 우측 가장자리의 안전한 곳으로 차를 옮긴 뒤, 탑승자는 가드레일 밖 등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고 구조를 요청해야 합니다. 도로교통법 제66조는 운행할 수 없게 된 자동차에 고장자동차 표지를 설치하고 도로 밖으로 옮기는 등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규정합니다. 같은 법 시행규칙 제40조는 안전삼각대를 뒤에서 오는 운전자가 확인할 수 있는 위치에 설치하도록 하며, 밤에는 500m 거리에서 식별할 수 있는 적색 섬광신호·전기제등 또는 불꽃신호도 규정합니다. 설치 과정에서 차로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면 자신의 안전을 먼저 확보하고 구조 담당자의 안내를 받으세요.
견인고리를 잘못 썼다는 사실만으로 일률적인 과태료 액수를 말할 수는 없습니다. 도로교통법의 고장 차량 조치 의무와 차량 설명서의 견인 허용 범위는 서로 다른 문제입니다. 교육 현장에서는 ‘고리가 있으니 일단 당겨 보자’는 말을 가장 경계합니다. 평소에 고리 위치와 내 차의 견인 제한만 확인해 두어도, 실제 고장 순간에 훨씬 안전한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