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불장 끝물에 처음 코인을 샀을 때는 가격 차트만 봤습니다. 상승 캔들이 길면 사람이 더 몰릴 테니 계속 오를 거라고 생각했죠. 크게 물린 뒤에는 가격이 움직이는 동안 시장에 어떤 포지션이 쌓이는지도 보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확인한 숫자 중 하나가 미결제약정입니다. 다만 이 숫자를 매수 신호처럼 쓰면, 예전의 제 실수를 다른 지표로 반복하기 쉽습니다.
미결제약정은 거래량과 다른 숫자다
미결제약정은 아직 청산되거나 종료되지 않은 선물 계약의 규모입니다. 거래량은 일정 시간 동안 얼마나 거래됐는지를 세고, 미결제약정은 지금 얼마나 많은 계약이 열려 있는지를 봅니다. 새 매수자와 새 매도자가 계약을 맺으면 미결제약정이 늘어납니다. 양쪽이 기존 계약을 닫으면 줄어듭니다. 계약마다 매수자와 매도자가 함께 있으므로, 숫자가 늘었다는 이유만으로 롱이 숏보다 많아졌다고 읽을 수는 없습니다. CME그룹의 설명도 계약의 양쪽을 두 번 세지 않고 한 계약으로 집계합니다.
예를 들어 거래량이 크게 늘어도 기존 포지션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 거래라면 미결제약정은 거의 그대로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거래량 증가와 함께 미결제약정도 늘면 새 계약이 쌓이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두 숫자를 나란히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먼저 같은 상품과 같은 단위를 맞춘다
제가 차트를 열면 비트코인 가격 옆에 해당 선물의 미결제약정부터 띄웁니다. 거래소의 선물 데이터 화면이나 파생상품 데이터 서비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때 비트코인 무기한 선물인지, 만기가 있는 선물인지 먼저 확인합니다. 한 거래소의 비트코인 계약과 여러 거래소의 합산 수치를 섞어 비교하면 변화가 커 보이거나 작아 보일 수 있습니다.
표시 단위도 중요합니다. 미결제약정이 코인 수량으로 표시되는지, 달러 가치로 환산되는지 확인합니다. 가령 열린 계약이 1만 BTC로 그대로인데 비트코인 가격만 10% 올랐다면, 달러로 환산한 미결제약정도 약 10% 커질 수 있습니다. 그 증가분을 전부 새 포지션 유입으로 해석하면 틀립니다. 저는 같은 거래소, 같은 계약, 같은 단위로 전날 또는 며칠 전 수치와 비교하고, 달러 표시만 볼 수 있을 때는 코인 수량 표시도 함께 찾습니다.
가격과 함께 보면 네 가지 장면이 나온다
- 가격 상승과 미결제약정 증가: 상승 중 새 계약이 쌓이는 장면입니다. 추세에 참여하는 사람이 늘었을 수 있지만, 어느 쪽 포지션이 우세한지는 이 둘만으로 알 수 없습니다.
- 가격 상승과 미결제약정 감소: 기존 숏 포지션이 닫히며 가격이 오른 상황일 수 있습니다. 상승 자체는 사실이지만 새 계약이 계속 유입되는지는 따로 봐야 합니다.
- 가격 하락과 미결제약정 증가: 하락 중 새 계약이 쌓입니다. 숏 진입일 수도 있고 하락을 받아내는 롱 진입일 수도 있어 다음 가격 움직임을 확인해야 합니다.
- 가격 하락과 미결제약정 감소: 포지션 정리나 청산이 진행됐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매도 압력이 끝났다는 뜻으로 바로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이 네 가지는 예측 공식이 아니라 상황을 읽는 출발점입니다. 특히 5분짜리 급등락 한 번보다 몇 시간에서 며칠에 걸친 흐름을 보는 편이 제게는 유용했습니다. 거래소마다 집계 범위와 갱신 시점도 다르므로 화면의 숫자가 정확히 같은 순간을 가리키는지 확인합니다.
진입 전에는 펀딩비와 청산 위험을 같이 본다
무기한 선물에서 가격과 미결제약정이 함께 급등하면 펀딩비도 확인합니다. 펀딩비는 롱과 숏 사이에 주기적으로 오가는 비용입니다. 양의 펀딩비가 높게 유지된다면 롱 보유 비용이 커졌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곧바로 하락한다는 신호는 아닙니다. 과열 가능성을 살피는 자료 하나로만 씁니다. 바이낸스 아카데미도 미결제약정 상승만으로 가격 상승을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합니다.
제 순서는 단순합니다. 먼저 가격과 거래량으로 움직임을 확인하고, 같은 계약의 미결제약정이 함께 변했는지 봅니다. 그다음 펀딩비와 최근 급격한 청산 흔적을 확인합니다. 수치가 서로 엇갈리면 억지로 방향을 정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가격이 빠르게 오르는데 미결제약정이 줄고 펀딩비가 높다면, 뒤늦게 추격할 이유가 충분한지 다시 생각합니다.
현물만 거래하는 사람도 미결제약정을 볼 만합니다. 파생상품 쪽 포지션이 급격히 쌓였다가 정리되면 현물 가격도 크게 흔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지표를 이해하려고 선물 거래를 시작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미결제약정을 ‘어느 쪽이 이길까’보다 ‘지금 얼마나 많은 포지션이 걸려 있고, 급한 움직임에 내가 휩쓸릴 위험은 얼마나 클까’를 묻는 데 씁니다. 그 질문이 제 거래 규모를 줄이게 만든 날도 꽤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