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길에서 아이들이 “엘을 가져가~” 하고 노래하듯 외치는 걸 들었어요. 처음엔 무슨 물건을 가져가라는 말인가 싶었는데, 춤 동작까지 곁들인 인터넷 유행어더라고요. 소리만 들으면 “애를 가져가”처럼 들려 놀랄 수도 있습니다. 실제 뜻을 알면 왜 게임 영상에서 시작해 일상에서도 따라 하는지 이해하기 쉬워요.
엘은 물건이 아니라 패배를 뜻해요
“엘을 가져가”는 영어 표현 ‘Take the L’을 한국어로 옮긴 말입니다. 여기서 L은 ‘loss’의 첫 글자예요. 게임이나 승부에서 진 것, 또는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은 상황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풀면 “패배를 인정해”, 조금 장난스럽게 말하면 “졌으면 받아들여” 정도가 됩니다.
영어권에서 누군가에게 ‘Take the L’이라고 하면 위로보다는 놀림에 가깝게 들릴 수 있어요. 친구와 게임을 하다가 이긴 사람이 진 친구에게 말한다면 “이번 판은 네가 졌잖아” 하고 약 올리는 느낌이죠. 반대로 스스로 “I’ll take the L”이라고 하면 “이번엔 내가 잘못했어” 또는 “이번 패배는 받아들일게”라는 뜻으로도 쓸 수 있습니다. 같은 L이어도 누구를 향해 말하는지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져요.
그런데 한국어로 “패배를 인정해”라고 하지 않고 “엘을 가져가”라고 하니 조금 엉뚱하게 들리죠. 영어 표현을 단어 순서에 가깝게 옮긴 말투가 그대로 유행하면서, 뜻을 몰라도 입에 남는 문장이 됐습니다. 실제로 알파벳 L을 건네거나 누군가에게 물건을 가져가라고 시키는 말은 아닙니다.
게임 속 춤이 말까지 유행시켰어요
이 표현이 국내에서 널리 들리게 된 배경에는 로블록스 게임 ‘라이벌즈’의 춤 동작이 있습니다. 게임 속 감정표현 가운데 ‘Take the L’이 있고, 한국어로는 ‘L을 가져가’라고 표시됩니다. 게임에서는 캐릭터가 동작을 하지만, 영상에서는 사람이 그 춤을 직접 따라 춰요. 게임 화면과 현실의 움직임을 나란히 보여 주는 방식이라 짧은 영상으로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특히 게임 유튜버 권루트가 동작과 말투를 따라 한 영상이 퍼지면서 “엘을 가져가~”라는 특유의 억양까지 함께 알려졌어요. MBC 뉴스에서도 아이들이 이 말을 외치며 춤추는 모습을 다뤘습니다. 표현의 사전적 뜻을 알아서 따라 하기보다는 리듬과 동작이 재미있어 흉내 내는 경우도 있는 거죠.
영상에서 “크림치즈 허니”처럼 들리는 다른 말이 이어져 더 헷갈릴 수 있어요. 여러 감정표현을 연달아 따라 하면서 함께 들리는 말이지, ‘엘을 가져가’가 ‘크림치즈 허니’를 뜻하는 건 아닙니다. 노래처럼 한 번에 들려도 각각 다른 동작의 이름이라고 생각하면 구분하기 편해요.
친구끼리 쓸 때와 조심할 때는 달라요
뜻을 알고 나면 쓰는 장면도 쉽게 그려집니다. 친구와 게임을 해서 3대 2로 이겼을 때 웃으면서 “엘을 가져가~”라고 할 수 있어요. 누가 가위바위보에서 지고 벌칙을 받게 됐을 때 장난으로 덧붙여도 비슷한 느낌입니다. 꼭 승패가 걸린 상황이 아니어도 작은 실수를 두고 춤이나 말투만 따라 하는 경우가 있고요.
다만 상대가 진 일을 속상해한다면 같은 말도 놀림으로 들립니다. 시험을 망쳤거나 중요한 경기에서 졌다는 사람에게 진지한 표정으로 “엘을 가져가”라고 하면 기분이 상할 수 있어요. 원래 표현에 상대의 패배를 콕 집는 뜻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친한 사이에서 서로 웃을 수 있는 상황인지 먼저 보는 게 좋아요.
아이에게서 이 말을 들었다면 바로 심한 말을 배웠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영상 속 소리와 춤이 재미있어서 따라 했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 말은 졌다는 뜻인데, 속상한 친구에게 하면 놀리는 말처럼 들릴 수 있어”라고 짧게 알려 주면 뜻과 쓰임을 함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비슷하게 들리는 말과 구별하는 법
빠르게 외치면 “엘을 가져가”가 “애를 가져가”처럼 들리기도 해요. 특히 주변이 시끄럽거나 춤 영상의 음악이 겹치면 첫 음절을 잘못 듣기 쉽습니다. 알파벳 L을 한국어로 읽은 ‘엘’이라는 걸 알면 낯선 말이 갑자기 익숙해져요. 영어 철자로는 ‘Take the L’, 한국어 영상에서는 ‘L을 가져가’ 또는 ‘엘을 가져가’라고 적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하나 헷갈리는 건 ‘L’ 자체예요. 문맥에 따라 이름이나 다른 약자일 수도 있지만, 이 춤과 함께 쓰이는 L은 ‘loss’를 가리킵니다. 게임에서 이긴 사람이 L을 외친다면 상대의 패배를 가리키는 장난이고, 아이들이 여럿이 춤추며 외친다면 유행하는 소리와 동작을 따라 하는 상황일 가능성이 큽니다.
처음 들었을 땐 엉뚱한 주문 같았는데, 알고 보니 영어 표현과 게임 춤이 합쳐진 말이었어요. 뜻만 외우기보다 누가 누구에게, 어떤 표정으로 말하는지를 보면 이 유행어의 분위기까지 훨씬 잘 읽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