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노이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은 건 호안끼엠 호수의 풍경보다 아침 골목의 소리였다. 문을 반쯤 열어 둔 집, 낮은 의자에 앉아 국수를 먹는 사람들, 그 사이로 천천히 지나가는 자전거. 길을 잘못 들었다고 생각한 순간에 오히려 이 도시의 하루가 가까워졌다. 그때부터 나에게 하노이 여행 적기는 유명한 장소를 많이 볼 수 있는 때보다, 오래 걸어도 지치지 않는 때를 뜻하게 됐다.
골목을 걷기에는 10월과 11월이 좋았다
하노이는 같은 길도 계절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 베트남 관광청은 9월부터 11월을 비교적 선선하고 맑은 시기로 안내한다. 내가 골목을 걸으며 좋다고 느낀 때도 10월과 11월이었다. 한낮에 그늘을 찾아 급히 들어가기보다 다음 모퉁이까지 더 가 보고 싶어지는 날이 많았다. 다만 가을이라고 매일 같은 날씨는 아니다. 얇은 겉옷 하나를 가방에 넣어 두니 해가 진 뒤 호숫가에 앉아 있을 때 편했다.
사람 적은 곳을 좋아한다면 계절만큼 시간도 중요하다. 같은 거리라도 이른 아침에는 가게가 문을 열고 동네가 움직이는 모습이 보이고, 저녁에는 식사하러 나온 사람들로 분위기가 바뀐다. 한적함을 찾아 새벽부터 무리할 필요는 없었다. 아침을 먹고 한두 시간 걷거나, 더운 오후를 쉬어 간 뒤 해 질 무렵 다시 나오는 식이 내 걸음에는 맞았다.
쭉박 호수에서 응우싸 골목까지
호안끼엠 주변의 활기가 좋으면서도 조금 벅찬 날에는 쭉박 호수 쪽으로 향했다. 호수를 따라 걷다가 응우싸 거리로 들어가면 물가의 열린 풍경과 생활 골목이 짧은 거리 안에서 번갈아 나타난다. 베트남 관광청도 이 일대를 걸어서 둘러볼 만한 길로 소개한다. 처음부터 목적지를 여러 개 찍기보다 호숫가에서 방향을 잡고, 마음에 드는 골목에서 잠깐 속도를 늦추는 편이 좋았다.
응우싸에서는 유명하다는 가게 앞 줄보다 동네 사람들이 앉아 식사하는 모습을 더 오래 보게 됐다. 오토바이가 가까이 지나가는 좁은 길도 있어서 사진을 찍으려 멈출 때는 먼저 가장자리로 비켜섰다. 조용한 골목이라고 해서 여행자만을 위한 공간은 아니다. 집 앞을 쓸고, 물건을 나르고, 식사를 하는 사람들의 길이기도 하다. 그걸 의식하고 나니 골목이 더 편안하게 보였다.
이쪽에서 더 걷고 싶다면 판딘풍 거리로 방향을 잡을 수 있다. 하지만 하루에 호수와 골목, 큰길을 전부 채우려 하면 발걸음이 다시 바빠진다. 나는 쭉박에서 차 한 잔 마시고 같은 길을 천천히 돌아오는 날이 오히려 좋았다. 갈 때 지나친 작은 가게와 집 앞 화분이 돌아올 때 눈에 들어왔다.
덥거나 비가 오는 때에는 걷는 방식을 바꿨다
하노이 여행 적기를 가을 한 계절로만 못 박고 싶지는 않다. 봄에도 걷기 좋은 날이 있고, 겨울의 흐린 하늘 아래서 마시는 따뜻한 차도 잘 어울린다. 다만 베트남 관광청의 기후 안내처럼 6월부터 8월은 덥고 습하며 비가 잦고, 겨울에는 생각보다 쌀쌀한 날이 있다. 여름에 갔다면 한낮의 긴 도보 대신 아침 산책과 실내 휴식을 나누고, 겨울이라면 얇은 옷을 여러 겹 챙기는 쪽이 낫겠다.
비가 온 날에는 계획을 한 칸 줄였다. 젖은 길에서 목적지를 고집하면 골목을 보는 여유가 사라졌다. 가까운 가게 처마 아래에서 비가 잦아들기를 기다리고, 숙소 주변의 익숙한 길만 걸어도 하루가 허전하지 않았다. 하노이는 한 번에 많이 봐야 마음에 남는 도시가 아니었다. 날씨가 흐리면 흐린 대로, 사람들의 일상은 계속 흘러갔다.
한 동네에 오래 머문 날이 더 선명했다
처음에는 지도에 표시한 장소를 따라 움직였다. 그러다 어느 날은 숙소 근처에서 아침을 먹고 쭉박 쪽을 걸은 뒤, 오후에는 별다른 일정 없이 쉬었다. 하루에 들른 곳은 적었지만 어느 길에서 햇빛이 들고, 어느 시간에 식당 앞 의자가 늘어나는지 조금 알게 됐다. 여행지에 익숙해진다는 건 이런 작은 변화를 알아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하노이에서 조용한 장소를 찾을 때는 이름난 ‘숨은 명소’보다 자신의 걸음에 맞는 동네 하나를 고르는 편이 좋았다. 길을 건널 때는 오토바이 흐름을 충분히 살피고, 주거 골목에서는 목소리와 카메라를 조금 낮추면 된다. 그렇게 걷다 보면 특별한 사건 없이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 생긴다. 내게 하노이 여행 적기는 달력의 한 날짜가 아니라, 골목 앞에서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날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