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홍천읍 시장 골목을 걷다가 한참 발을 멈췄다. 관광지에 도착했다는 느낌보다, 누군가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잠깐 섞여 든 느낌이 좋았다. 홍천 여행지 추천을 묻는다면 나는 이 골목에서 시작해 홍천미술관을 들르고, 오후에는 수타사 옆 숲길을 걷는 하루를 권하고 싶다. 거창한 풍경을 모으기보다 동네의 속도에 맞춰 걷는 코스다.
장날을 피해 걸은 홍천읍 시장 골목
홍천 중앙시장과 홍천시장은 홍천읍 홍천로8길을 사이에 두고 가까이 있다. 중앙시장 쪽에는 감자떡과 메밀부침 같은 먹거리가 있고, 홍천시장 쪽에서는 채소와 건어물, 생활용품을 파는 가게들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먹을 것을 하나 고른 뒤 골목을 조금 더 걸었다. 가게 앞에 놓인 바구니와 장을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 동네를 더 오래 보게 했다.
홍천군청 안내에 따르면 홍천 5일장은 날짜 끝자리가 1일과 6일인 날에 선다. 장날에는 볼거리가 많지만 사람도 모인다. 한적한 골목을 원한다면 장날이 아닌 평일이 더 잘 맞는다. 대신 문을 연 노점이나 먹거리 선택지는 줄어들 수 있다. 북적이는 장터와 조용한 시장 골목 중 어느 쪽이 좋은지에 따라 날짜를 고르면 된다.
시장에서는 길을 급히 끝내지 않는 편이 좋았다. 한 바퀴 돌고 나면 처음 지나친 가게가 다시 보이고, 큰길에서는 놓쳤던 작은 골목도 눈에 들어온다. 다만 이곳은 주민들이 장을 보는 생활 공간이다. 가게 앞을 오래 막거나 사람을 향해 카메라를 드는 일은 조심하게 된다. 그렇게 속도를 늦추니 시장 구경이 조금 더 편안해졌다.
시장 다음에는 홍천미술관 앞에서 쉬었다
시장 골목을 나온 뒤에는 홍천읍 희망로 55의 홍천미술관으로 향했다. 1956년에 지어진 옛 홍천군청사를 바탕으로 한 공간이라, 전시를 보기 전 건물 앞에 서 있는 시간부터 좋다. 홍천군 문화관광포털은 이 건물이 2014년 미술관으로 문을 열었다고 안내한다. 반듯하면서도 세월이 느껴지는 외관이 시장 골목의 분위기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미술관은 규모를 앞세우는 곳이라기보다 잠깐 걸음을 늦추기 좋은 곳이었다. 전시 내용은 방문할 때마다 달라지니, 어떤 작품을 꼭 봐야 한다고 정해 두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전시실을 둘러본 뒤 건물 밖으로 나와 주변 길을 조금 더 걸었다. 가까이에 홍천성당도 있어 읍내의 오래된 풍경을 이어서 볼 수 있다. 종교시설 주변에서는 예배와 방문객의 시간을 배려하며 조용히 지나는 게 좋겠다.
홍천미술관의 안내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이고, 월요일과 명절, 1월 1일은 쉰다. 시장을 먼저 들른다면 오전에 골목을 걷고 미술관 문이 열린 뒤 이동하는 흐름이 자연스럽다. 전시 일정이나 운영 시간은 바뀔 수 있으니 떠나기 전 홍천군 안내를 한 번 확인하면 헛걸음을 줄일 수 있다.
수타사에서는 절보다 숲길에 오래 머물렀다
읍내를 걸은 뒤에는 영귀미면의 수타사로 향했다. 수타사는 홍천에서 이름난 장소라 주말에는 한적함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도 사찰을 둘러보고 공작산 생태숲 쪽으로 발을 옮기면 걷는 맛이 달라진다. 연못 주변의 길과 나무 사이 흙길, 물가를 따라 이어지는 산소길이 있어 한곳에 서서 사진만 찍고 돌아오기에는 아깝다.
나는 절을 빠르게 훑기보다 생태숲에서 걸음을 늦추는 쪽이 좋았다. 나무 아래에서는 발소리가 작아지고, 물이 보이는 자리에서는 잠깐 멈추게 된다. 길을 길게 이어 걷지 않아도 된다. 몸 상태와 날씨를 보며 숲길 한 구간을 걷고 같은 길로 돌아와도 충분하다. 비가 온 뒤에는 흙길과 계곡 가까운 구간이 미끄러울 수 있으니 신발만큼은 편한 것으로 챙기는 편이 낫다.
수타사 일대는 찾는 사람이 많은 만큼 조용함이 늘 보장되지는 않는다. 내가 권하고 싶은 시간은 평일 오전이나 늦은 오후다. 사찰 앞보다 숲길에서 머무는 시간을 늘리면 이곳을 조금 다르게 기억하게 된다. 물가에서는 정해진 길을 벗어나지 않고, 잠깐 앉았던 자리의 쓰레기도 다시 챙겨 나오면 좋겠다.
세 곳을 하루에 걸을 때의 속도
이 코스는 홍천읍 시장과 미술관을 묶어 걷고, 수타사까지는 차로 이동하는 편이 수월하다. 오전에는 시장 골목에서 간단히 먹고, 미술관을 둘러본 뒤 오후를 숲길에 남겨 두면 된다.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수타사까지의 버스 운행 시간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 읍내에서는 마음 가는 대로 걸어도 되지만, 돌아오는 차편은 미리 알아두는 편이 편하다.
사람이 적은 곳을 찾는 여행이라고 해서 아무도 없는 곳만 골라야 하는 건 아닌 듯하다. 홍천에서는 장을 보는 골목의 생활감, 오래된 건물 앞의 잠깐의 쉼, 숲길에서 들리는 물소리가 차례로 남았다. 다음에 다시 간다면 장소를 더 늘리기보다 시장 골목을 한 번 더 천천히 걸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