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한 집 주방에서 도마를 꺼냈는데, 앞면은 멀쩡하고 싱크대 쪽을 향한 뒷면에만 검은 점이 모여 있었습니다. 씻은 뒤 물기가 남은 채 벽에 바짝 기대 둔 도마였어요. 도마 곰팡이 제거를 생각하면 먼저 솔과 세제를 찾기 쉽지만, 저는 도마를 계속 써도 되는 상태인지부터 봅니다. 음식에 직접 닿는 물건이라 얼룩이 옅어졌다는 것만으로 안심하기 어렵거든요.
검은 점이 보이면 재질과 흠집을 먼저 보세요
표면이 매끈한 플라스틱 도마에 작은 얼룩이 생겼다면 세척 상태를 확인할 여지가 있습니다. 반면 나무 도마는 물을 흡수하고, 칼집이나 이음매 안쪽은 솔이 닿기 어렵습니다. 미국 농무부도 도마에 깊고 씻기 어려운 홈이 생기면 재질과 관계없이 교체하도록 안내합니다. 특히 나무 도마의 갈라진 틈, 접합 부위, 측면까지 검은 점이 이어지거나 씻은 뒤에도 퀴퀴한 냄새가 남는다면 새 도마를 쓰는 편이 낫습니다.
검은 자국이 모두 곰팡이는 아닙니다. 식재료 색이 배거나 칼자국에 때가 낀 경우도 있죠. 하지만 눈으로 원인을 확실히 구별하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손톱이 걸릴 만큼 깊은 홈에 점이 박혀 있거나, 닦아도 다시 올라온다면 그 도마에 생채소를 써는 일은 멈추는 게 좋겠습니다. 몇 만 원짜리 도마를 살리려고 음식이 닿는 면을 계속 의심하며 쓰는 건 생활이 꽤 피곤해지는 선택입니다.
매끈한 도마는 씻고 소독한 뒤 완전히 말립니다
흠집이 얕고 표면이 단단한 플라스틱 도마라면 먼저 음식 찌꺼기를 버리고 흐르는 물과 주방 세제로 앞면, 뒷면, 가장자리까지 문질러 씻습니다. 도마를 받치는 고무발이나 손잡이 홈이 있다면 그 부분도 확인하세요. 곰팡이처럼 보이는 자국이 도마 자체가 아니라 고무발 아래의 고인 물에서 시작되는 집도 있습니다. 세척 후에는 깨끗한 물로 충분히 헹굽니다.
그다음 식품 접촉면에 사용할 수 있는 소독제를 제품 표시대로 쓰면 됩니다. 희석 비율과 접촉 시간은 제품마다 다르니 표시를 우선하세요. 미국 농무부는 무향 액체 염소계 표백제 약 15mL를 물 약 3.8L에 섞는 도마 소독 방법도 안내하지만, 국내 제품은 성분과 농도가 다를 수 있습니다. 임의로 진하게 섞지 말고, 사용 중인 제품의 도마·식기 사용 가능 여부와 헹굼 지침을 확인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표백제를 쓴다면 창을 열고 장갑을 끼세요. 식초나 다른 세제와 섞어서 쓰면 안 됩니다. 소독은 눈에 보이는 찌꺼기를 씻어낸 다음 단계입니다. 검은 점을 가리려고 표백제에 오래 담가 두거나, 거친 수세미로 표면을 더 깊게 파내는 방식도 권하지 않습니다. 세척과 소독을 마쳤는데 자국이 깊은 홈에 남아 있거나 냄새가 계속 난다면 교체할 때입니다.
나무 도마는 억지로 살리기보다 상태를 따집니다
나무 도마의 넓은 면에 음식 얼룩이 살짝 남은 정도라면 세제로 씻고 물기를 닦아 세워 말리며 상태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솜털처럼 보이는 것이 올라왔거나 검은 반점이 결을 따라 퍼졌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보이는 면만 문질러도 안쪽까지 깨끗해졌는지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특히 오래 젖어 있었거나 갈라짐이 있는 도마는 과감히 교체하겠습니다.
뜨거운 물에 오래 담그거나 식기세척기에 넣는 방법도 도마의 구조를 봐야 합니다. 통원목과 접합목은 관리 조건이 다르고, 제조사가 물에 담그지 말라고 한 제품도 있습니다. 표면을 사포로 갈아 검은 부분을 없애는 방법은 음식 얼룩 관리에는 쓰일 수 있어도, 곰팡이가 보이는 도마를 안전하게 되돌렸다는 증거가 되지는 않습니다. 도마 가격이 아까울수록 판단 기준을 단순하게 두는 게 낫습니다. 틈과 냄새가 남으면 바꾸는 겁니다.
다시 생기지 않게 하는 건 보관 자리입니다
제가 주방에서 가장 자주 옮기는 물건이 도마 거치대입니다. 씻은 도마를 싱크대 뒤 벽에 붙여 놓으면 한쪽 면은 계속 축축합니다. 행주로 물기를 한 번 닦고, 두 면에 공기가 통하도록 세워 두면 건조가 훨씬 수월해집니다. 거치대 바닥에 물이 고인다면 도마 아래쪽도 계속 젖으니 받침을 비우고 닦아야 합니다.
도마를 여러 장 겹쳐 넣는 집이라면 완전히 마른 뒤 수납하세요. 생고기용과 바로 먹는 채소용을 나누면 세척 순서도 덜 헷갈립니다. 새 도마를 살 때는 주방 크기에 맞는 폭, 손이 닿는 보관 자리, 씻기 쉬운 형태를 먼저 봅니다. 두껍고 멋진 도마 하나보다 매일 씻고 세워 말릴 수 있는 도마가 오래 갑니다. 집을 꾸밀 때도 그렇지만,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는 힘은 물건 자체보다 그 물건이 놓이는 자리에서 나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