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한 수험생의 계획표를 봤는데,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빈칸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매일 강의 3개, 문제집 40쪽, 오답 복습까지 적혀 있었죠. 그런데 실제 공부 시간은 하루 2시간 남짓이었습니다. 계획을 못 지켜서 의지가 약한 게 아니라, 처음부터 들어갈 수 없는 양을 넣은 겁니다.
저는 이런 때 계획을 다섯 칸으로 다시 씁니다. 대상, 시간, 순서, 문제, 기록. 앞 글자만 따면 ㄷㅅㅅㅁㄱ입니다. 특별한 암기법이라기보다 계획이 실제 생활에서 굴러갈지 확인하는 순서에 가깝습니다.
대상부터 좁혀야 계획이 움직인다
첫 칸의 대상은 시험 이름만 뜻하지 않습니다. 이번 주에 끝낼 범위와 지금 내 실력까지 함께 적는 겁니다. 예를 들어 ‘자격증 필기 공부’는 너무 넓습니다. ‘이번 주에는 1과목 2개 단원을 읽고 기출 30문제를 푼다’ 정도여야 오늘 할 일을 고를 수 있습니다.
시작할 때는 최근 기출을 20~30문제만 풀어봐도 좋습니다. 점수로 자신을 평가하려는 게 아닙니다. 모르는 용어가 많은지, 내용을 아는데 문제에서 자꾸 틀리는지 구분하려는 거죠. 전자라면 기본서 읽는 시간을 늘리고, 후자라면 해설을 보며 문제를 다시 푸는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같은 시험을 준비해도 출발점에 따라 계획은 달라져야 합니다.
시간은 남는 시간이 아니라 쓸 수 있는 시간으로 잡는다
‘퇴근 후 3시간’이라고 적기 전에 지난 일주일을 떠올려보세요. 집에 와서 식사와 씻는 시간을 빼면 책상에 앉을 수 있는 날이 몇 번인지부터 봐야 합니다. 주 5일을 공부할 수 있다면 7일짜리 계획을 세울 이유가 없습니다.
가령 평일 4일에 각 60분, 주말 하루에 120분을 낼 수 있다면 일주일 공부 시간은 6시간입니다. 이 6시간을 전부 새 진도에 쓰면 복습이 밀립니다. 새 진도 3시간, 문제 풀이 2시간, 밀린 부분을 위한 1시간처럼 나눠두면 일정이 흔들려도 다음 주까지 무너지지는 않습니다.
여기서 흔한 실패는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을 같은 것으로 보는 겁니다. 60분을 확보했다면 처음에는 40분짜리 과제 하나만 넣어도 충분합니다. 남은 시간에 채점하거나 다음에 볼 쪽을 표시하면 됩니다. 계획표에 여백이 있어야 예상 밖의 피로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순서는 강의보다 확인할 방법을 먼저 정한다
강의를 끝까지 들었는데 문제를 펼치면 막막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듣는 동안 이해한 것과 혼자 답을 고르는 것은 다른 일이니까요. 한 단원을 공부할 때는 짧게 읽거나 듣고, 바로 관련 문제를 풀고, 틀린 이유를 확인하는 순서가 낫습니다.
예를 들어 60분을 쓴다면 개념 25분, 문제 20분, 채점과 오답 확인 15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숫자는 과목에 맞게 바꿔도 됩니다. 중요한 건 문제를 다음 주로 미루지 않는 겁니다. 오늘 배운 내용에서 무엇을 못 쓰는지 오늘 발견해야 다음 공부가 쉬워집니다.
교재가 여러 권일 때는 역할을 나눈다
기본서 두 권과 문제집 세 권을 동시에 펼치면 진도만 복잡해집니다. 기본 개념을 볼 책 한 권, 실력을 확인할 문제집 한 권부터 정하세요. 다른 책은 설명이 이해되지 않거나 문제 수가 부족할 때 꺼내면 됩니다. 책을 많이 소유한 것과 공부할 길이 분명한 것은 별개입니다.
문제와 기록이 다음 주 계획을 만든다
네 번째 칸인 문제는 ‘몇 쪽까지 풀기’보다 ‘몇 문제를 어떤 조건에서 풀기’로 적는 편이 낫습니다. 처음에는 단원별 문제 15개를 시간 제한 없이 풀고, 개념이 익숙해지면 20개를 25분 안에 푸는 식입니다. 시험이 가까워질수록 실제 시험처럼 과목을 섞고 시간을 재야 합니다.
오답에는 해설을 길게 베껴 쓸 필요가 없습니다. 틀린 문제 옆에 ‘개념을 몰랐음’, ‘조건을 놓침’, ‘시간이 부족했음’ 중 하나만 표시해도 패턴이 보입니다. 개념 오류가 많으면 해당 부분을 다시 읽고, 조건을 자주 놓친다면 문제의 요구를 밑줄 치며 풀어야 합니다. 시간 부족은 충분히 맞히는 상태가 된 뒤 풀이 속도를 점검하는 편이 좋습니다.
마지막 칸인 기록은 매일 세 줄이면 됩니다. 계획한 시간, 실제로 한 일, 다음에 먼저 볼 것. 일요일에는 계획과 실제를 비교해 한 가지만 고칩니다. 6시간 계획에 3시간밖에 못 했다면 다음 주 계획을 4시간으로 낮추거나 공부 요일을 바꿔야겠죠. 못 지킨 양을 그대로 다음 주에 얹으면 빚처럼 쌓입니다.
시험 준비가 길어질수록 좋은 날의 공부량보다 피곤한 날에도 이어갈 수 있는 최소량이 중요해집니다. ㄷㅅㅅㅁㄱ 다섯 칸을 채워보면 무엇을 줄이고 무엇을 반복할지가 보입니다. 계획은 나를 몰아붙이는 약속보다, 다음 주에도 다시 책상에 앉게 해주는 도구여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