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11월 예배 대표기도 순서를 부탁받고 빈 종이 앞에 한참 앉아 있었다. 감사의 계절이니 감사부터 말하면 될 것 같았는데, 막상 쓰려니 한 해가 저무는 아쉬움도 있고 주변 사람들의 걱정도 떠올랐다. 그래서 이번에는 거창한 표현을 찾기보다, 지금 우리 공동체가 함께 드릴 수 있는 말을 적어봤다.
11월 기도에는 어떤 마음을 담으면 좋을까
11월은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기 좋은 때다. 풍성했던 순간에 감사하면서도, 마음처럼 풀리지 않은 일을 안고 예배에 온 사람도 있을 것이다. 대표기도라면 어느 한쪽의 마음만 대변하기보다 두 마음을 함께 품는 편이 자연스럽다.
저는 감사, 돌봄, 새로운 힘이라는 세 가지 흐름으로 문장을 잡았다. 감사는 받은 것을 기억하는 말이고, 돌봄은 아픈 이웃을 잊지 않는 말이다. 마지막에는 남은 한 해를 성실하게 살아갈 힘을 구했다. 교회마다 11월에 추수감사예배나 특별한 행사가 있을 수 있지만, 아래 문안은 일반 주일예배에서도 읽을 수 있게 썼다.
함께 드릴 수 있는 11월 대표기도문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11월의 이 주일에 저희를 예배의 자리로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바쁜 날들 속에서도 잠시 걸음을 멈추고 하나님 앞에 마음을 모읍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기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저희 곁에 함께할 사람을 주시고, 하루하루 살아갈 힘을 주신 은혜를 기억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받은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감사에 인색했던 마음을 돌아봅니다. 내 형편을 살피느라 가까운 이의 어려움을 놓친 순간도 있었습니다. 저희가 입으로만 사랑을 말하지 않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먼저 손을 내밀게 하옵소서. 작은 친절을 미루지 않게 하시고, 서로의 말을 끝까지 듣는 마음을 주옵소서.
몸과 마음이 지친 성도들을 돌봐 주옵소서. 병중에 있는 이에게 회복의 힘을, 돌보는 가족에게는 버틸 힘과 쉴 틈을 허락해 주옵소서. 일터와 가정에서 답을 찾지 못해 걱정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혼자 모든 짐을 져야 한다고 느끼지 않도록 곁을 지켜 주시고, 저희도 서로에게 믿음직한 이웃이 되게 하옵소서.
저희 교회를 위해 기도합니다. 예배와 봉사의 자리마다 서로를 존중하게 하시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하는 손길도 귀하게 여기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익숙한 사람들만 챙기지 않게 하시고, 처음 온 이도 편히 머물 수 있는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이웃의 필요를 듣고 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찾아가게 하옵소서.
말씀을 전하시는 목사님께 지혜와 힘을 더해 주시고, 듣는 저희에게는 말씀을 삶으로 옮길 용기를 주옵소서. 남은 한 해를 서둘러 채우려 하기보다 오늘 맡겨진 일을 성실히 감당하게 하시며, 흔들리는 날에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지 않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우리 교회에 맞게 바꿀 때 살펴볼 부분
기도문을 그대로 읽어도 되지만, 대표기도는 그날 함께 모인 사람들의 기도이기도 하다. 그래서 예배 전에는 우리 교회의 상황에 맞지 않는 문장이 없는지 한 번 읽어보는 게 좋았다. 예를 들어 교회에 환우를 위한 기도 제목이 있다면 돌봄의 문단에 그 마음을 더 담을 수 있다. 다만 공개를 원하지 않는 개인의 사정이나 이름은 기도 중에 꺼내지 않는 편이 조심스럽다.
- 추수감사예배라면 감사의 문단에 한 해의 수고와 수확을 돌아보는 문장을 더한다.
- 새가족이 함께하는 예배라면 교회 문단의 환대하는 마음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적는다.
- 기도 시간이 짧다면 각 문단에서 한두 문장씩 덜어내되, 감사와 중보와 말씀을 위한 기도는 남긴다.
소리 내어 읽으면 글로 볼 때와 느낌이 다르다. 숨이 차는 문장은 둘로 나누고, 평소 쓰지 않는 어려운 표현은 익숙한 말로 바꾸는 게 편했다. 급하게 읽기보다 문장 사이에 잠깐씩 쉬어 가면, 기도하는 사람도 회중도 말의 뜻을 따라가기 수월하다.
감사만큼 이웃을 기억하는 마음
11월 대표기도문을 쓰면서 가장 오래 머문 문장은 감사의 말보다 이웃을 위한 기도였다. 누군가에게는 풍성한 달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유난히 버거운 달일 수 있으니까. 한 해의 끝이 가까워질수록, 함께 예배하는 사람들의 서로 다른 시간을 조용히 품는 기도를 드리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