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 정보
지명 유래
섬의 지형이 소와 같으며, 섬 이름을 따서 마을명을 우도라 칭하며 득량만 가운데 있는 유인도로서 예부터 이섬을 쇠섬으로 불렀기때문에 우도라 함. 지명유래집 군의 남양면 서쪽 득량만에 있는 섬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둘레가 45리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여지도』에는 “관아 북쪽 55리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청구도』, 『동여도』, 『대동여지도』에는 우기도(牛耆島)라고 표기되어 있다. 『도서지』에 의하면 이 섬에는 고려 말 황씨가 처음 거주하였다. 이 사람이 섬에서 큰 돌을 하나 보게 되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소머리처럼 생겼으므로 ‘소섬’ 또는 ‘쇠이’라 불렀다고 한다. 뒤에 이것이 한자화하여 우도(牛島)가 되었다고 한다. 한편 이 섬에는 대나무가 많이 자생하고 있는데, 임진왜란 때 황씨들이 화살을 만들어 나라에 바쳤고, 그 화살로 큰 승리를 거두었으므로 우죽도(牛竹島)라고 불렀다. 뒤에 죽(竹)자를 없애고 다시 우도라고 하여 오늘에 이르렀다고도 전해진다. 지자체지명유래 본부락(本部落)의 동명(洞名)을 맨처음에 소섬 혹은 쇠섬이라 불렀는데, 이는 맨처음에 들어와서 살던 황씨(黃氏)가 섬의 지형(地形)을 살펴보다가 가로 13m, 세로 8m 가량되는 암석(岩石)이 있어 자세기 살펴보니 우두형(牛頭形)이 분명(分明)하므로 동명(洞名)을 소섬, 혹은 쇠섬이라 하였으며, 이를 음차(音借)하여 우도(牛島)라고 했다 한다. 또는 이 섬에 자생(自生)한 대가 많으므로 황씨(黃氏)들은 임진왜란(壬辰倭亂)때에 이 대로 화살을 만들어 국가(國家)에 바쳐서 그 화살로 인(因)하여 대승(大勝)을 거두었다고 하며 따라서 동명(洞名)도 우죽도(牛竹島)라고 개칭(改稱)했다가 죽전(竹田)이 우연히 고사(枯死)하면서 황씨(黃氏)들도 호열자(虎列剌)로 인(因)하여 멸망(滅亡)하고 이씨(李氏)들이 들어와서 살면서 우죽도(牛竹島)라는 동명(洞名)의 죽자(竹字)를 없애고 우도(牛島)라 다시 개칭(改稱)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금(至今)으로부터 약 3백여년전(約三百餘年前)에 과역면(過驛面) 백일도(白日島)에 사는 밀양박씨(密陽朴氏) 한분이 대제학(大提學)을 지낼때에 우도(牛島)를 국가(國家)로부터 녹지(祿地)로 받았다가 후(後)에 여식(女息)을 대서면(大西面) 화산리(禾山里) 여산송씨(礪山宋氏) 가문(家門)으로 출가(出嫁)시키면서 조급예물(助給禮物)로 준 우도(牛島)라고 전(傳)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