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수납장을 보러 갔다가 마음에 드는 제품 앞에서 한참 서 있는 분을 봤어요. 집에 놓을 자리의 너비는 기억했는데, 서랍을 끝까지 열 공간은 재보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집을 꾸미는 일을 10년 하면서 이런 장면을 자주 봤습니다. 전시장에서는 예뻤던 물건이 집에 오면 불편해지는 이유는 대개 크기보다 동선에 있어요.
흔히 서울 리빙페어 2026이라고 부르는 서울리빙디자인페어는 2026년 2월 25일부터 3월 1일까지 코엑스에서 열렸습니다. 가구부터 조명, 생활용품까지 한자리에서 비교하기 좋았던 행사였죠. 행사가 끝난 뒤에도 사진과 구매 후보를 다시 보는 분들이 있을 텐데, 그때 기준은 ‘무엇이 예뻤나’보다 ‘우리 집에서 계속 편할까’여야 합니다.
사진보다 먼저 집에서 막히는 곳을 적어두기
페어에 가기 전이든, 다녀와서 구매를 결정하기 전이든 집을 한 바퀴 걸어보면 좋습니다. 현관에서 가방을 어디에 내려놓는지, 저녁마다 소파 옆에 무엇이 쌓이는지, 식탁 의자를 뺄 때 어느 벽에 닿는지요. 보기 싫은 장면이 반복되는 자리에는 대개 물건을 둘 곳이 없거나, 있어도 쓰기 불편한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고객 집에서 가구 자리를 볼 때 제품이 놓일 폭만 재지 않습니다. 문과 서랍이 열리는 방향, 사람이 지나갈 자리, 청소기가 들어갈 틈까지 같이 봅니다. 예를 들어 폭 80cm 수납장이 들어갈 벽이 있다고 해도, 앞쪽에 서랍을 열고 몸을 움직일 여유가 없다면 그 제품은 맞지 않아요. 식탁도 상판 크기만 보고 고르면 의자를 뺄 때마다 가족이 옆으로 비켜 지나가게 됩니다.
- 놓을 자리의 가로·세로와 문이 열리는 방향을 기록하기
- 가족이 하루에 여러 번 지나는 길을 사진으로 남기기
- 지금 쓰는 물건 중 무엇이 불편한지 한 문장으로 적기
이렇게 세 가지만 갖고 있어도 전시장에서 눈에 들어오는 물건이 달라집니다. ‘우리 집에 둘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생기면 충동구매도 한 번 멈추게 되고요.
전시장에서는 필요한 공간부터 보기
2026년 행사에서 코엑스가 안내한 전시 구성을 보면 A홀은 가구와 리빙아트, B홀은 가구·가전·조명, C홀은 생활용품·테이블웨어·침구와 패브릭, D홀은 인테리어와 가드닝 등을 중심으로 꾸려졌습니다. 전부 빠짐없이 보려 하면 발만 아프고, 정작 필요한 제품은 비슷하게 기억나기 쉽습니다. 집에서 가장 불편한 공간 하나를 정한 뒤 관련 제품을 먼저 비교하는 편이 낫습니다.
예를 들어 원룸에서 침대 옆이 늘 어수선하다면 큰 장식장보다 좁은 협탁, 벽에 붙일 수 있는 조명, 자주 쓰는 물건을 담을 작은 수납 도구를 먼저 봅니다. 30평대 거실에서 가족이 함께 지내는 시간이 길다면 소파의 색보다 앉는 깊이와 커버 관리 방식이 중요할 수 있고요. 전시장에 꾸며진 방은 여유 있게 보이도록 배치된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집 평면도 안에 같은 여백이 있는지는 따로 확인해야 해요.
예쁜 제품 앞에서는 관리 방법을 묻기
손으로 만져볼 수 있다는 게 페어의 큰 장점입니다. 서랍을 직접 열어보고, 의자에 앉아보고, 조명 아래에서 원단 색을 볼 수 있으니까요. 사진만 찍고 지나가기 아까운 순간입니다. 수납장은 손잡이를 잡기 편한지, 서랍이 꽉 찼을 때도 부드럽게 움직일지 살핍니다. 테이블은 상판의 얼룩 관리법을, 패브릭 제품은 커버를 분리해 세탁할 수 있는지 묻고요.
밝은색 소파를 고를 때는 특히 생활 장면을 떠올려야 합니다. 반려동물과 지내거나 거실에서 간식을 자주 먹는 집이라면 원단이 예쁜지만으로 결정하기 어렵죠. 판매자에게 오염됐을 때 닦는 방법과 교체 가능한 부품을 물어보세요. 답을 듣고도 평소 생활에 맞겠다는 생각이 들면 오래 쓸 가능성이 높습니다.
조명도 켜진 모습만 보면 판단이 흐려집니다. 전구를 갈기 쉬운지, 책을 읽는 자리까지 빛이 닿는지, 밤에 켰을 때 눈부심은 없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저는 조명 사진을 찍을 때 제품만 담지 않고 주변 벽과 바닥까지 함께 찍어요. 빛이 공간에 어떻게 퍼졌는지 나중에 다시 보기 위해서입니다.
예산은 매일 손이 가는 곳에 먼저 쓰기
전시장에서는 작은 소품이 부담 없이 느껴져 장바구니에 금방 쌓입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면 둘 자리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예산이 정해져 있다면 장식품보다 매일 사용하는 가구와 조명, 불편을 줄여줄 수납에 먼저 배분하는 편이 낫습니다. 손에 자주 닿는 의자나 식탁의 만족감은 생각보다 오래갑니다.
저는 구매 후보를 세 칸으로 나눠 적습니다. 지금 없어서 불편한 것, 낡아서 바꿀 때가 된 것, 보기 좋아서 갖고 싶은 것. 앞의 두 칸을 먼저 비교하고 마지막 칸은 며칠 뒤 다시 봅니다. 할인 가격이나 현장 혜택도 중요하지만, 집에 들인 뒤 몇 년 동안 쓸 물건이라면 배송비와 설치 조건, 관리 비용까지 합쳐 판단해야 실제 예산이 보입니다.
서울 리빙페어 2026에서 찍어둔 사진이 많다면 지금 다시 넘겨보세요. 계속 눈이 가는 제품 옆에 우리 집 치수와 생활 습관을 적어보는 겁니다. 사진 속 배치를 그대로 가져올 필요는 없어요. 매일 지나가는 길이 편해지고, 쓰고 난 물건을 제자리에 두기 쉬워지는 선택이 결국 집에 오래 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