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도 수기해변으로 가는 길에 작은 골목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바다는 조금 뒤에 봐도 될 것 같아 그쪽으로 걸었다. 낮은 담장 너머로 빨래가 흔들리고, 집 앞에는 가지런히 놓인 화분이 있었다. 섬 여행을 왔다는 기분보다 누군가 사는 동네를 천천히 지나고 있다는 느낌이 먼저 들었다.
시도는 인천의 신도·모도와 다리로 이어진 섬이다. 세 섬을 하루에 모두 돌아볼 수도 있지만, 나는 시도에 오래 머물렀다. 해변까지 가는 길과 마을 안쪽 길을 번갈아 걸으니 같은 섬에서도 풍경의 속도가 달랐다.
바다보다 먼저 걸은 마을길
신도에서 시도로 건너와 수기해변 쪽으로 향했다. 큰길을 따라가면 목적지를 찾기 쉽다. 그런데 마을로 들어서는 길에서는 자꾸 발이 느려졌다. 집과 집 사이로 바다가 잠깐 보였다가 사라지고, 밭 옆에는 손때가 묻은 농기구가 놓여 있었다. 사진을 찍을 만한 장면을 찾기보다 길을 걸으며 그런 작은 것들을 보게 됐다.
골목은 관광객을 위해 만들어진 산책로가 아니다. 차가 지나갈 때는 가장자리로 비켜섰고, 대문이 열린 집 앞에서는 카메라를 들지 않았다. 조용한 동네를 찾아왔다는 이유로 주민의 하루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 정도만 신경 써도 걷는 마음이 편해졌다.
길을 헤맬 만큼 복잡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해변을 향하는 갈림길에서는 위치를 한 번 확인했다. 섬 안의 길은 지도로 보면 가까워 보여도, 걷다 보면 생각보다 시간이 간다. 나는 왕복할 시간을 남겨 두고 걸음을 돌릴 지점을 느슨하게 정해 두었다.
수기해변에서는 잠깐 앉아 있었다
마을길을 지나 수기해변에 닿자 시야가 갑자기 넓어졌다. 골목에서는 담장과 지붕을 가까이 보며 걸었는데, 여기서는 바다 쪽으로 눈길이 한참 갔다. 바람이 있는 날이라 오래 서 있기보다 한쪽에 앉아 쉬었다. 물가를 걷는 사람도 있었지만, 내가 머문 동안은 각자 떨어져 시간을 보내는 분위기였다.
해변에 도착했을 때 기대했던 모습과 실제 풍경이 꼭 같지는 않았다. 서해의 물가는 물때에 따라 표정이 크게 달라진다. 물이 가까이 들어온 바다를 떠올리고 왔다면 갯벌이 넓게 드러난 날에는 낯설 수 있다. 나는 그날 보이는 선을 따라 눈을 옮기는 쪽이 더 좋았다. 멀리까지 이어진 평평한 바닥과 물이 남은 자리가 천천히 구분됐다.
주말 낮에는 섬을 찾는 차와 사람이 늘 수 있다. 인천시도 신도평화대교 개통 뒤 섬 안 도로와 주차장 주변의 혼잡을 예상했다. 조용히 걷고 싶다면 평일에 시간을 내는 편이 마음이 놓이겠다. 방문하는 날의 한적함을 장담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서둘러 다음 장소로 이동하지 않을 여유는 만들 수 있다.
신도와 시도를 잇는 길에서
돌아가는 길에는 왔던 길을 그대로 되짚지 않고 다리 쪽으로 걸었다. 신도와 시도를 잇는 길에서는 방금 지나온 마을이 조금 멀어 보였다. 이곳에서 기억에 남은 건 해변의 넓이만이 아니었다. 섬과 섬 사이를 건너기 전후로 보이는 집들의 간격, 길가의 밭, 바람을 피하려 담장 가까이 붙어 걷던 순간이 함께 남았다.
신도·시도·모도는 서로 이어져 있어 자전거로 돌아보는 사람도 많다. 자전거라면 세 섬의 거리를 하루에 담을 수 있겠지만, 도보로는 마음에 드는 한 구역을 골라 걷는 편이 덜 급하다. 나는 모도까지 욕심내지 않은 덕분에 시도의 골목과 해변을 두 번씩 볼 수 있었다. 같은 길도 갈 때와 돌아올 때 눈에 들어오는 것이 달랐다.
지금은 섬에 들어가는 길도 달라졌다
가장 먼저 확인할 것은 교통편이다. 2026년 7월 영종도와 신도를 잇는 신도평화대교가 개통했다. 예전 여행기에 적힌 배를 타는 동선만 보고 출발하면 길이 헷갈릴 수 있다. 나는 영종도에서 신도로 들어간 뒤 시도로 이동하는 흐름을 기준으로 잡았다. 차 없이 간다면 출발 전 인천시 교통 안내에서 섬으로 가는 버스와 돌아오는 편을 확인하는 게 좋다.
먹을 곳도 도시의 관광지처럼 촘촘히 이어지지는 않는다. 걷기 시작하기 전에 식사 시간을 대강 생각해 두고 물을 챙기니 중간에 가게를 찾아 서두를 일이 적었다. 특히 마을 안쪽으로 걸을 때는 쉬어 갈 곳을 바로 만날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 편이 편했다. 그 덕분에 해변에서 앉아 있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돌아오며 생각해 보니 이날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은 곳은 이름 붙은 명소보다 수기해변으로 이어지는 평범한 길이었다. 생활하는 사람에게는 늘 지나던 길일 테다. 나는 그 길을 잠시 빌려 걸었고, 그래서 더 조용히 지나가고 싶었다. 다음 섬 여행에서도 하루에 몇 곳을 봤는지보다 한 동네를 얼마나 천천히 걸었는지가 오래 남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