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책장에서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다시 봤는데, 제목이 먼저 눈에 들어왔어요. 아주 힘든 마음과 떡볶이를 먹고 싶은 마음이 한 문장에 붙어 있죠. 처음에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보이지만, 생각해 보면 사람 마음이 원래 그렇습니다. 하루 종일 가라앉아 있다가도 좋아하는 음식을 떠올릴 수 있고, 친구와 웃고 돌아와 혼자 있을 때는 허전해질 수 있으니까요.
백세희 작가의 이 책은 정신과 전문의와 나눈 12주간의 대화를 중심으로 쓰인 에세이입니다. 줄거리를 따라가는 소설과는 읽는 속도가 조금 달라요.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보다 그 말 앞뒤에서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피면 더 오래 남습니다. 제목이 궁금해서 책을 집었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읽겠다는 부담은 내려놓아도 좋겠어요.
제목의 두 마음을 함께 읽기
책 제목에서 ‘죽고 싶다’는 말만 붙잡으면 무겁고, ‘떡볶이는 먹고 싶다’는 말만 보면 가볍게 느껴질 수 있어요. 하지만 이 책이 보여주는 건 서로 다른 감정이 같은 날에 존재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좋아하는 게 남아 있다고 해서 괴로움이 사라지는 건 아니고, 괴롭다고 해서 모든 즐거움이 끊기는 것도 아니죠.
예를 들어 직장에서 하루 종일 평소처럼 일한 뒤 집에 와서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 사람이 있다고 해볼게요. 퇴근길에 떡볶이를 사 먹었다는 사실만으로 그 사람의 힘든 마음을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행동과 속에서 겪는 일은 다를 수 있으니까요. 책을 읽을 때도 저자의 밝아 보이는 순간을 찾아 상태를 재단하기보다, 두 감정이 어떻게 나란히 놓이는지 보는 편이 자연스럽습니다.
예스24 도서 소개에는 저자가 기분부전장애를 겪으며 전문의와 나눈 대화가 책의 중심이라고 나옵니다. 다만 책 속 경험은 저자 한 사람의 기록이에요. 비슷한 기분을 느꼈다고 같은 상태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공감되는 문장을 만났다면 내 마음을 설명할 말을 하나 얻었다고 생각하면 충분합니다.
상담 대화에서 멈춰 읽기
이 책의 재미는 상담실에서 대화가 오가는 방식에 있어요. 저자가 자기 생각을 꺼내면 전문의가 질문하거나 다른 각도에서 되짚습니다. 그 과정에서 처음에는 당연해 보였던 생각이 조금 낯설어지기도 하죠. 혼자 머릿속으로 같은 고민을 반복할 때와는 다른 리듬입니다.
읽다가 마음에 걸리는 대목을 만나면 바로 다음 장으로 넘어가지 말고, 그때 저자가 어떤 상황을 말하고 있는지 먼저 보면 좋아요. 누군가의 반응이 두려운 건지, 스스로에게 실망한 건지, 아니면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허전함인지요. 감정 이름이 비슷해도 상황은 다를 수 있습니다. 한 문장의 조언만 떼어 읽으면 놓치기 쉬운 부분이기도 해요.
12주라는 구성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첫 주의 이야기와 뒤쪽의 이야기가 한 번에 매끈하게 이어지지는 않아요. 같은 고민이 다시 나타나기도 하고, 다른 고민이 불쑥 끼어들기도 합니다. 실제로 마음을 돌보는 일도 그렇죠. 어제 이해했다고 오늘 곧바로 편안해지는 건 아니니까요. 이 책에서 빠른 변화를 기대하기보다 대화가 쌓이는 모습을 따라가면 부담이 덜합니다.
남의 시선이 끼어드는 순간 찾기
책의 목차에는 자존감, 자신을 감시하는 마음, 외모에 대한 생각, 관계에서 느끼는 불안처럼 일상에 가까운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그래서 상담 내용이 낯선 의학 용어의 나열처럼 느껴지지 않아요. 누군가 답장을 늦게 하면 내가 잘못한 말을 했나 되짚고, 칭찬을 들어도 상대가 예의상 한 말이라고 넘기는 장면을 떠올리게 됩니다.
저는 이런 부분을 읽을 때 ‘상대가 실제로 한 말’과 ‘내가 그 말에 붙인 뜻’을 나눠 생각하는 방식이 유용하다고 느껴요. 친구가 “요즘 바빠”라고 말한 건 사실이지만, “이제 나를 싫어하나 봐”는 내 추측일 수 있죠. 추측이 늘 틀리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둘을 구분하면 불안한 생각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조금 선명해집니다.
이 방식은 책을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라는 처방이 아니라, 읽으면서 해볼 수 있는 작은 질문에 가깝습니다. 저자의 고민과 내 경험이 닮아 보여도 관계와 상황까지 같지는 않으니까요. 공감되는 부분은 가까이 두고, 맞지 않는 부분은 억지로 내 이야기로 만들지 않아도 됩니다.
내 하루에 옮겨 적는 방법
책을 덮은 뒤 기억나는 문장이 하나 있다면, 그 문장을 외우기보다 왜 멈춰 읽었는지 적어두는 편이 실용적입니다. 길게 쓸 필요도 없어요. ‘회의 뒤에 괜히 작아진 기분이 들었다’, ‘친구와 즐거웠는데 집에 와서 허전했다’처럼 그날 있었던 일과 감정을 한 줄씩만 적어도 됩니다.
며칠 뒤 같은 감정이 찾아왔을 때 그 메모를 보면 차이가 보일 수 있어요. 지난번에는 잠이 부족했고, 이번에는 누군가의 말을 오래 곱씹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기록하면 막연한 ‘나는 늘 이래’라는 생각 대신, 언제 특히 힘들었는지 살펴볼 단서가 생깁니다. 물론 메모를 한다고 마음이 바로 나아지는 건 아니에요. 다만 나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덜 흐릿하게 남겨둘 수 있습니다.
책을 읽으며 상담을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그 마음도 가볍게 넘기지 않았으면 해요. 책은 다른 사람의 경험을 들려주지만, 내 상태를 직접 듣고 함께 판단해 주는 사람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실제로 자신을 해치고 싶은 마음이 들거나 당장 안전이 걱정된다면, 책을 더 읽기 전에 가까운 사람에게 알리고 119나 응급실의 도움을 받는 것이 우선입니다.
책을 덮은 뒤에도 남는 것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읽고 모두가 같은 장면에서 위로받지는 않을 거예요. 어떤 사람에게는 상담 대화가 가까이 느껴지고, 다른 사람에게는 저자의 마음을 따라가는 일이 벅찰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읽는 속도를 스스로 정해도 괜찮습니다. 한 장을 읽고 덮었다가 며칠 뒤 다시 펼치는 방식도 이 책과 잘 어울립니다.
제가 이 제목을 오래 기억하는 이유는 복잡한 마음을 서둘러 하나로 만들지 않아서예요. 허전한 날에도 맛있는 것을 먹고 싶을 수 있고, 웃었던 날 밤에도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런 하루를 두고 스스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탓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책을 덮은 뒤에도 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