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친구가 SBS 드라마 중 시청률이 가장 높았던 작품부터 보고 싶다고 했다. 숫자대로 다섯 편을 적어 주려다가 잠깐 멈췄다. 1990년대의 50%와 최근의 20%대는 방송을 보는 방식부터 달랐고, 무엇보다 흥행작 다섯 편의 재미가 서로 너무 달랐다.
그래도 sbs 드라마 시청률 순위는 고르기 좋은 출발점이다. 아래 숫자는 각 작품의 평균이 아닌 방송 당시 최고 시청률이다. SBS가 소개한 기록을 기준으로 높은 순서대로 놓았다. 오래된 작품은 조사 시기와 발표 자료에 따라 수치가 조금씩 다르게 적히기도 하니, 소수점보다 작품의 성격을 함께 보는 편이 유용하다.
최고 시청률로 본 SBS 드라마 상위 다섯 편
- 1위 모래시계 — 64.5%, 1995년
- 2위 파리의 연인 — 57.6%, 2004년
- 3위 청춘의 덫 — 53.1%, 1999년
- 4위 토마토 — 52.7%, 1999년
- 5위 야인시대 — 51.8%, 2002년 첫 방송
모래시계의 64.5%는 SBS가 자사 역사에서 최종회 시청률로 소개하는 수치다. SBS는 파리의 연인 57.6%, 청춘의 덫 53.1%, 토마토 52.7%, 야인시대 51.8%도 각각 보도했다. 다만 이 다섯 편을 같은 해에 경쟁한 작품처럼 읽으면 감이 어긋난다. 지금은 본방송 외에도 다시보기와 여러 시청 경로가 있지만, 당시에는 정해진 시간에 TV 앞에 모이는 경험이 훨씬 컸다.
1위 모래시계는 높은 숫자만 남긴 작품이 아니다
모래시계를 처음 권할 때는 시대극에 대한 마음의 준비부터 묻는다. 세 인물의 관계를 따라가다 보면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격동기가 개인의 삶을 어떻게 흔드는지 보인다. SBS가 소개한 평균 시청률은 46%, 최종회는 64.5%다. 마지막 한 회만 폭발한 작품이 아니라 방송 내내 시청자를 붙잡았다는 뜻에 가깝다.
지금 보면 화면의 속도와 연기 방식이 낯설 수 있다. 근데 몇 회만 지나면 인물들이 선택의 대가를 치르는 과정이 오래 남는다. 한국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묵직한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다섯 편 중 가장 먼저 고를 만하다. 폭력과 국가폭력의 묘사가 있어 가볍게 쉬려고 틀 작품으로는 권하기 어렵다. 여기서는 사건의 전개와 끝은 밝히지 않겠다.
로맨스라면 파리의 연인, 감정의 격랑이라면 청춘의 덫
파리의 연인은 2000년대 로맨틱 코미디의 열기를 확인하기 좋은 작품이다. 박신양과 김정은의 호흡, 알아듣기 쉬운 감정선, 기억에 남는 대사가 빠르게 시청자를 끌어들인다. 최고 57.6%라는 기록을 떠나, 한 회를 보면 다음 회를 누르게 만드는 힘이 있다. 대신 신데렐라 서사와 당시의 연애관이 지금 취향에는 낡게 느껴질 수 있다. 익숙한 로맨스의 원형을 즐기는 사람에게 더 잘 맞는다.
청춘의 덫은 방향이 정반대다. 심은하가 연기한 윤희의 상처와 분노를 중심에 둔 멜로드라마로, 인물 사이의 긴장이 오래 이어진다. 최고 53.1%를 기록할 만큼 많은 시청자가 지켜봤지만, 설레는 연애물을 기대하고 시작하면 피로할 수 있다. 배신과 복수의 감정을 깊게 따라가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권한다. 주요 관계가 어떻게 뒤집히는지는 보는 재미를 위해 남겨 두겠다.
토마토와 야인시대, 그리고 지금 보기 좋은 선택
토마토는 최고 52.7%를 기록한 1999년의 로맨스다. 억울한 상황에서도 자기 자리를 찾아가려는 주인공을 응원하게 만드는, 당시 유행한 밝고 선명한 이야기의 맛이 있다. 무거운 모래시계나 청춘의 덫보다 진입하기 쉽다. 다만 우연이 겹치는 전개를 싫어한다면 시대의 분위기를 즐긴다는 마음으로 보는 편이 낫다.
야인시대는 김두한을 중심으로 긴 시대를 훑는 124부작이다. 최고 시청률 51.8%만 보고 가볍게 시작하기에는 분량이 꽤 크다. 인물이 많고 갈등도 계속 커지므로 긴 호흡의 시대극을 좋아할 때 맞는다.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극적으로 재구성한 드라마인 만큼, 장면을 실제 역사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는 편이 좋다.
최근 SBS 드라마에 익숙하다면 감각을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다. 펜트하우스2는 전국 기준 최고 29.2%, 낭만닥터 김사부 첫 시즌은 27.6%를 기록했다. 둘 다 큰 인기를 얻었지만 체감 속도는 다르다. 빠른 반전과 과장된 갈등이 좋다면 펜트하우스2, 인물들이 현장에서 부딪히며 성장하는 이야기가 좋다면 낭만닥터 김사부가 먼저다. 펜트하우스2는 시즌1의 관계를 알고 봐야 더 잘 따라갈 수 있다.
친구에게는 결국 숫자 옆에 취향을 적어 보냈다. 묵직한 시대극은 모래시계, 편하게 빠져들 로맨스는 파리의 연인, 강한 감정극은 청춘의 덫. 시청률은 많은 사람이 그 작품 앞에 앉았다는 기록이고, 지금 내 시간을 맡길 한 편을 고르는 기준은 그다음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