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속초에 묵을 때마다 느끼는 게 있다. 같은 바다 전망 숙소라도 창밖만 보고 돌아오면 아쉽고, 숙소 위치를 잘 잡으면 차를 세워 둔 채 꽤 많은 곳을 걸어볼 수 있다. 반대로 사진 속 풍경만 믿고 예약했다가 바다까지 큰길을 건너야 하거나, 밤마다 주변이 시끄러워 잠을 설친 적도 있다. 강원도 속초 가볼만한곳을 고를 때는 명소의 개수보다 내가 어느 시간에 어디를 걷고 싶은지부터 생각하는 편이 낫다.
속초해수욕장은 아침에, 바다향기로는 바람 잦을 때
속초해수욕장은 처음 가는 사람에게도 무난하다. 모래사장에 내려서 바다를 바로 볼 수 있고, 주변에 숙소와 식당도 많다. 다만 한낮이나 주말에는 조용한 해변을 기대하기 어렵다.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과 산책하는 사람이 한꺼번에 몰리면 바다 앞에 서 있어도 마음이 분주하다. 나는 이 근처에 묵을 때 체크아웃 전에 잠깐 나오는 아침 산책이 더 좋았다. 물빛도 보고, 그날 바람이 얼마나 센지도 몸으로 알 수 있다.
걷는 시간이 조금 더 있다면 해변 남쪽에서 외옹치해변을 거쳐 외옹치항으로 이어지는 바다향기로를 붙여볼 만하다. 속초시 관광 안내에는 이 구간이 약 1.74㎞, 걷는 시간은 약 30분으로 소개돼 있다. 숫자만 보면 짧지만, 바다 쪽에서 사진을 찍고 쉬다 보면 더 걸린다. 길을 끝까지 걸을 생각이라면 돌아오는 시간도 따로 잡아야 한다.
아쉬운 점도 분명하다. 바닷가 길이라 그늘과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날씨가 흐린 날에는 풍경이 기대보다 밋밋할 수 있고, 비나 강풍 뒤에는 현장 통제 여부를 확인하는 편이 좋다. 유모차나 걷기 불편한 가족과 함께라면 해변에서 가까운 구간만 걷는 선택도 충분하다. 산책 하나 때문에 일행 모두를 지치게 할 필요는 없다.
영금정은 짧게 보고, 영랑호는 시간을 넉넉히
영금정은 속초에서 바다를 가까이 보는 장소로 기억에 남는다. 동명항 쪽에 있어 다른 일정 사이에 들르기도 쉽다. 그런데 사진에서 기대한 것처럼 오래 앉아 쉬는 곳으로 생각하면 조금 다를 수 있다. 사람이 많은 시간에는 전망 좋은 자리를 오래 차지하기 어렵고, 바람이 강하면 잠깐 서 있는 것만으로도 꽤 춥다. 일출을 보러 간다면 계절에 맞는 겉옷을 챙기는 게 낫다.
조용히 걷고 싶다면 영랑호가 더 잘 맞는다. 속초시가 안내하는 호수 둘레는 약 8㎞다. 한 바퀴를 목표로 잡으면 가벼운 산책이라고 하기엔 제법 길다. 나는 이런 곳에서 괜히 완주 욕심을 내다가 다음 일정에서 발이 무거워지는 게 싫다. 호수 풍경이 마음에 드는 구간을 정해 걷고, 같은 길로 돌아와도 아쉬울 게 없다. 바다가 거칠거나 해변에 사람이 많을 때 분위기를 바꿔주기에도 좋다.
두 곳 중 하나만 고른다면 취향이 갈린다. 바다를 배경으로 짧고 선명한 풍경을 보고 싶다면 영금정, 대화하며 오래 걷고 싶다면 영랑호다. 숙소를 고를 때도 이 차이가 크다. 영금정 근처는 동명항과 시내 일정을 묶기 편하고, 영랑호 쪽은 저녁에 한적한 산책을 원하는 사람에게 어울린다.
아바이마을과 시장은 차를 한 번 세우고 걷는 편이 편했다
아바이마을은 음식 이름만 보고 들어가면 금방 나올 수도 있다. 이곳은 한국전쟁 때 내려온 실향민들이 자리 잡은 마을이다. 갯배를 타고 수로를 건너 골목을 걸으면, 메뉴판보다 먼저 마을의 위치와 분위기가 눈에 들어온다. 속초관광수산시장과 이어서 보기에도 좋다. 속초시 관광 안내도 갯배와 아바이마을, 시장을 한 동선으로 소개한다.
시장은 먹을 게 많아 즐겁지만, 배고픈 채로 들어가면 줄부터 서게 된다. 닭강정이나 순대처럼 들고 다닐 음식은 숙소에 돌아가 먹을지, 그 자리에서 먹을지 먼저 정하면 덜 번거롭다. 포장 음식을 많이 사면 이후 산책 내내 손이 무겁다. 붐비는 날에는 인기 점포 한 곳에 시간을 다 쓰기보다 골목을 한 번 둘러보고 고르는 쪽이 내 취향이다.
숙소 리뷰에서 시장까지 ‘가깝다’는 말을 볼 때도 거리만 믿지 않는다. 도보 몇 분인지보다 길을 건너기 쉬운지, 밤에 돌아올 때 걸을 만한지, 차를 다시 빼야 하는지가 더 중요했다. 시장과 아바이마을을 같은 날 볼 생각이라면 낮 동안 차를 세워 두고 걷는 동선을 먼저 그려보는 게 편하다.
숙소 위치를 정하면 여행 순서도 달라진다
속초해수욕장 근처 숙소는 아침 바다를 보기 좋다. 대신 사람이 몰리는 시기에는 주변 소음과 주차가 신경 쓰일 수 있다. 바다 전망 객실도 층수와 앞 건물에 따라 보이는 범위가 달라진다. 예약 사진을 볼 때는 가장 넓게 찍힌 풍경 한 장보다 객실 창에서 찍은 후기 사진을 여러 장 보는 편이다. 창을 열 수 있는지, 바다까지 실제로 걸어갈 길이 있는지도 확인한다.
설악산을 일정의 중심에 둘 거라면 해변 숙소가 늘 편한 건 아니다. 아침에 산으로 움직이고 오후에 영랑호나 영금정으로 내려오는 식으로 하루를 쓰는 편이 덜 바쁘다. 반대로 바다 산책이 목적이라면 설악산까지 한꺼번에 넣지 않아도 속초에서 보낸 시간이 충분하다. 나는 1박 일정에 명소를 빽빽하게 적는 것보다 숙소 근처에서 아침과 밤에 각각 한 번 걸을 곳을 고른다. 속초는 그 두 번의 산책이 여행 기억에 오래 남는 도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