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 순우리말은 왜 고뿔일까요?

감기 순우리말은 왜 고뿔일까요?

얼마 전 수업에서 ‘감기를 순우리말로 뭐라고 할까?’ 하고 물었더니, 한 학생이 ‘코뿔’이라고 답했습니다. 감기에 걸리면 코부터 불편해지니 그럴듯하지요. 실제로는 ‘고뿔’입니다. 첫소리가 ‘코’가 아닌 까닭까지 따라가 보면, 낯선 단어 하나가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감기 순우리말은 고뿔입니다

‘감기’는 感氣라고 적는 한자어입니다. 두 글자가 한자라고 해서 중국에서 그대로 들어온 말은 아닙니다. 국립국어원은 ‘감기’를 우리나라에서 만든 한자어로 설명합니다. 우리가 오래 써 온 우리말이면서, 어종으로는 한자어인 셈이지요.

그에 대응하는 순우리말이 ‘고뿔’입니다. 국립국어원 사전에서는 고뿔을 감기를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로 풀이합니다. ‘감기’만 맞고 ‘고뿔’은 틀린 옛말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지금은 ‘감기에 걸렸다’가 훨씬 익숙해서, ‘고뿔이 들었다’는 말이 조금 오래된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교실에서 두 말을 나란히 적으면 학생들이 종종 묻습니다. ‘감기가 순우리말인 줄 알았어요.’ 소리만으로는 한자어인지 가리기 어렵습니다. 뜻과 원래 표기를 함께 보아야 합니다.

코에 난 불이 어떻게 고뿔이 되었을까요?

‘고뿔’의 옛 모습은 ‘곳블’입니다. 여기서 ‘고’는 오늘날의 ‘코’를 가리키던 말이고, ‘블’은 ‘불’의 옛말입니다. 그 사이의 ‘ㅅ’까지 합치면 대략 ‘코의 불’이라는 그림이 나옵니다. 코가 화끈거리거나 콧물이 나고 숨쉬기 답답할 때의 감각을 불에 빗댄 표현이지요. 병의 이름을 몸으로 느낀 증상에서 붙인 것입니다.

말은 오래 쓰이는 동안 소리가 달라졌습니다. 국립국어원의 어원 설명을 따르면 ‘곳블’이 ‘곳불’을 거쳐 ‘고뿔’로 굳었습니다. 뒤 음절의 ‘ㅂ’이 된소리 ‘ㅃ’로 바뀐 흔적이 지금 표기에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글자는 ‘고불’도 ‘고뿔’도 아닌, 두 번째 음절을 된소리로 적은 ‘고뿔’입니다.

옛말의 ‘고’가 지금은 ‘코’가 되었으니 ‘코뿔’이 더 맞아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낱말 전체가 일찍 굳어 ‘고뿔’이라는 형태로 전해졌습니다. 지역에 따라 ‘코뿔’이라고 말하는 경우는 있어도 표준어로 적을 때는 ‘고뿔’을 씁니다. 지금의 ‘코’와 ‘불’을 단순히 붙여 표기를 새로 만들 수 없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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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뿔은 얼마나 오래된 말일까요?

‘고뿔’은 최근에 감기를 순화하려고 새로 만든 말이 아닙니다. 국립국어원은 1542년 문헌인 『분문온역이해방』에 ‘곳블’이 나타난다고 설명합니다. 적어도 16세기 자료에서 확인되는 말인 것이지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표기는 바뀌었어도 코에 불이 난 듯한 느낌을 담은 이름은 이어졌습니다.

반면 ‘감기’는 1778년 『방언집석』에 ‘감긔’가 든 표현으로 나타납니다. 이 두 문헌만 놓고 보면 확인되는 기록은 ‘고뿔’ 쪽이 200년 넘게 앞섭니다. 그렇다고 ‘감기’라는 말이 바로 1778년에 만들어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문헌에서 처음 확인된 시점과 실제로 사람들이 말하기 시작한 시점은 다를 수 있으니까요.

두 낱말을 비교하면 이름을 붙이는 방식도 보입니다. ‘고뿔’은 아픈 코의 감각을 눈앞에 그리게 하고, ‘감기’는 한자로 병을 가리킵니다. 같은 병을 두고도 생활 속 표현과 한자어가 함께 쓰인 것입니다.

글에서는 어떻게 쓰면 자연스러울까요?

학교 알림장이나 병원 예약 문자라면 ‘감기에 걸려 쉬겠습니다’가 읽는 사람에게 바로 닿습니다. 반면 ‘할머니가 고뿔이 드셨다’고 쓰면 말하는 사람이나 장면의 분위기가 살아납니다. 어느 말이 더 우리말답다고 따져 하나만 고를 필요는 없습니다. 쓰는 자리에서 독자가 쉽게 알아들을 말을 고르면 됩니다.

고뿔을 쓸 때 기억할 것은 표기입니다. 발음과 옛 형태를 떠올리면 ‘고뿔’을 ‘고불’이나 ‘코뿔’로 적기 쉽습니다. 국립국어원 사전에 실린 표기는 ‘고뿔’입니다. ‘뿔’이 소의 뿔을 뜻해서 붙은 말도 아닙니다. 옛 형태의 ‘블’이 소리 변화를 거쳐 남은 자리라고 보면, 왜 ‘뿔’로 적는지도 이해됩니다.

학생에게 ‘고뿔’을 외우라고 하면 며칠 뒤 다시 묻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코를 고라고 했고, 코에 불이 난 듯해서 곳블이라고 불렀다’고 이야기하면 표기까지 함께 떠올립니다. 말의 유래는 낱말에 작은 장면 하나를 붙여 줍니다. 그 장면이 있으면 오래된 말도 지금의 말처럼 가까워집니다.

감기 순우리말은 왜 고뿔일까요? -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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