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학생이 알림장에 ‘내일 뵈면 되요’라고 적었다. 소리 내어 읽으면 자연스러운데, 글로 쓰면 두 군데가 걸린다. ‘뵈면’은 맞고 ‘되요’는 ‘돼요’로 고쳐야 한다. 이런 말을 만날 때마다 나는 빨간 펜보다 먼저 말의 뿌리를 보여 준다. 소리가 비슷해도 만들어진 길이 다르면 표기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되요’와 ‘돼요’는 어디서 갈릴까요?
‘돼’는 ‘되어’가 줄어든 말이다. 그래서 ‘돼요’를 길게 펼치면 ‘되어요’가 된다. ‘숙제가 다 되어요’가 자연스러우니 ‘숙제가 다 돼요’도 맞다. 반면 ‘되요’를 ‘되어요’로 펼칠 수는 없다. ‘되’는 동사 ‘되다’의 어간이라 뒤에 어미가 붙어야 한다.
‘일이 잘 되면 연락해’에서는 ‘되면’이 맞다. ‘되어면’이라고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면 안 돼’에서는 ‘안 되어’로 펼쳐지니 ‘돼’가 맞다. 같은 원리로 ‘됐다’는 ‘되었다’의 준말이고, ‘되고’에는 ‘-어’가 들어 있지 않으므로 ‘돼고’가 아니다. 국립국어원도 이처럼 ‘-어’가 결합하는지를 기준으로 두 형태를 구별한다.
교실에서는 가끔 ‘되’ 자리에 ‘하’, ‘돼’ 자리에 ‘해’를 넣어 보기도 한다. ‘하면’은 자연스럽고 ‘해면’은 어색하니 ‘되면’, ‘해요’가 자연스러우니 ‘돼요’를 고르는 식이다. 빠른 점검에는 쓸 만하지만, 왜 그런지는 ‘돼=되어’에서 찾아야 오래 남는다.
‘안’과 ‘않’은 왜 서로 대신할 수 없을까요?
‘안’은 ‘아니’가 줄어든 말이다. ‘안 간다’를 풀면 ‘아니 간다’가 된다. 움직임이나 상태를 부정할 때 앞에 놓이는 부사이므로 ‘안 먹어’, ‘안 예뻐’처럼 뒤의 말과 띄어 쓴다.
‘않다’는 ‘아니하다’가 줄어든 말이다. ‘가지 않다’를 풀면 ‘가지 아니하다’가 된다. 앞말에 ‘-지’를 붙인 뒤 ‘않다’를 잇는 ‘먹지 않다’, ‘춥지 않다’가 익숙한 까닭이다. ‘오늘은 안 간다’와 ‘오늘은 가지 않는다’는 뜻이 비슷해도 문장의 짜임은 다르다. ‘오늘은 않 간다’라고 쓰면 ‘않다’가 들어갈 자리가 아니다.
학생에게는 문장을 길게 풀어 읽게 한다. ‘아니’로 풀리면 ‘안’, ‘아니하다’로 풀리면 ‘않다’다. 다만 ‘안 하다’와 ‘하지 않다’처럼 두 표현이 모두 가능한 문장도 있다. 어느 한쪽을 무조건 틀렸다고 하기보다 문장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보는 편이 정확하다.
‘왠지’는 맞는데 ‘왠일’은 왜 어색할까요?
‘왠지 기분이 좋다’의 ‘왠지’는 ‘왜인지’가 줄어든 말이다. 이유를 뚜렷하게 모르겠다는 뜻이니 ‘왜’의 흔적이 보인다. ‘웬지’라고 쓰기 쉬운 이유도 소리가 비슷해서다.
그런데 ‘웬 사람이 찾아왔어?’의 ‘웬’은 ‘어찌 된’ 또는 ‘어떠한’을 뜻하는 별개의 말이다. ‘웬 사람’, ‘웬 소리’처럼 명사 앞에 놓인다. ‘웬일이야?’도 ‘왠일’이 아니라 ‘웬일’이다. 이때 ‘웬일’은 사전에 한 단어로 올라 있으므로 붙여 쓴다. 국립국어원의 사전 설명도 ‘웬’을 ‘왜’의 변형으로 보지 않는다.
‘왠지’ 하나만 ‘왜인지’로 바꾸어 보고, 그 밖의 ‘웬 사람’, ‘웬일’에는 ‘어찌 된’을 넣어 보면 구별이 한결 쉽다. 발음만 붙잡고 외울 때보다 뜻을 함께 보는 쪽이 덜 흔들린다.
‘몇일’처럼 보이는데 왜 ‘며칠’일까요?
‘몇 월 며칠에 만날까?’라고 쓰면 ‘몇 월’ 옆의 ‘며칠’이 유난히 낯설어 보인다. 그래서 ‘몇일’이나 ‘몇 일’을 적는 학생이 많다. 하지만 날짜를 물을 때도, 지난 기간을 셀 때도 표준어는 ‘며칠’이다. ‘생일이 몇 월 며칠이야?’, ‘며칠 동안 쉬었어?’에 모두 같은 형태가 들어간다.
이 말에는 소리가 중요한 단서다. ‘몇’과 ‘일’을 각각 살려 결합한 말이라면 발음이 지금의 ‘며칠’과 같아지지 않는다. 국립국어원은 실제로 굳어진 발음과 표기를 근거로 ‘몇일’이나 ‘몇 일’이 아닌 ‘며칠’을 제시한다. ‘몇 월’이 맞으니 뒤에도 ‘몇 일’일 거라고 짐작하면 오히려 틀리기 쉽다.
뜻을 나누어 다른 표기를 찾을 필요도 없다. 달력에서 날짜를 짚든, 여행이 이어진 날수를 세든 ‘며칠’을 쓴다. 예외처럼 보이는 말을 만나면 억지로 익숙한 낱말 둘로 쪼개기보다, 하나의 말로 굳은 과정을 보는 게 낫다.
‘짜장면’은 언제부터 맞는 말이 되었을까요?
예전 문제집에서 ‘짜장면’을 틀린 표기로 배운 기억이 있는 어른은 지금도 ‘자장면’만 맞다고 말한다. 당시에는 ‘자장면’만 표준어였으니 그 기억이 엉뚱한 것은 아니다. 다만 기준이 바뀌었다. 국립국어원은 널리 쓰이는 언어 현실을 반영해 2011년 ‘짜장면’을 ‘자장면’과 함께 표준어로 인정했다. 지금은 둘 다 맞다.
여기서 배울 점은 맞춤법이 소리 나는 대로 적기만 하는 약속도, 한 번 정해지면 영원히 움직이지 않는 약속도 아니라는 것이다. ‘되어’가 ‘돼’로 줄어드는 방식처럼 말의 구조를 살피는 기준이 있고, ‘짜장면’처럼 실제 쓰임을 받아들여 달라진 기준도 있다.
학생이 ‘왜 틀렸어요?’라고 물으면 나는 먼저 그 말이 어디서 왔는지 함께 읽는다. 이유를 알면 다음에 비슷한 문장을 만나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 맞는 글자를 하나 더 외우는 것보다 그 힘이 오래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