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네 식구가 사는 24평 아파트에 갔는데, 현관 수납장 안에는 빈 바구니가 세 개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 모자와 장갑은 매일 식탁 위에 쌓였어요. 넣을 자리가 없는 게 아니라, 현관에서 벗은 물건을 식탁까지 들고 들어오는 흐름이 문제였습니다. 바구니 하나를 현관 낮은 칸으로 옮기니 식탁에 놓이는 물건이 눈에 띄게 줄었죠.
수납용품은 물건을 더 많이 숨겨주는 도구가 아닙니다. 쓰는 자리와 돌려놓는 자리 사이의 거리를 줄여주는 도구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저는 집을 볼 때 수납장 크기보다 가족이 물건을 내려놓는 위치부터 봅니다.
물건이 쌓이는 자리에서 한 걸음만 움직여 보세요
소파 옆에 리모컨과 충전선이 늘 있다면 거실장 깊숙한 칸에 예쁜 상자를 놓아도 잘 쓰지 않게 됩니다. 손을 뻗어 닿는 위치에 낮은 트레이 하나를 두는 편이 오래갑니다. 반대로 한 달에 한 번 꺼내는 계절용 물건은 손이 닿기 쉬운 자리를 차지할 이유가 없어요.
수납용품을 사기 전 사흘 정도만 물건이 쌓이는 곳을 보세요. 현관 바닥의 가방, 주방 조리대의 영수증, 침대 옆의 읽다 만 책처럼 반복되는 자리가 있을 겁니다. 그 자리에 두어도 되는 물건인지,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는 물건인지 먼저 판단합니다. 자주 쓰는 물건이라면 쌓이는 자리 가까이에 수납 자리를 만드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동선이 겹치는 곳에는 뚜껑 없는 용기가 편합니다. 양손에 장을 본 봉투를 들고 돌아온 사람이 매번 뚜껑을 열어 열쇠를 넣기는 어렵거든요. 뚜껑 달린 상자는 시야를 깔끔하게 만들지만, 하루에도 여러 번 쓰는 물건에는 작은 동작 하나가 부담이 됩니다.
치수는 수납장 안쪽과 꺼내는 공간까지 재야 합니다
온라인 사진에서 딱 맞아 보였던 바구니가 실제 선반에는 안 들어가는 일이 흔합니다. 선반의 가로·세로·높이를 안쪽 기준으로 재고, 경첩이나 문틀이 튀어나온 부분도 확인하세요. 수납장 안에 들어가는 크기와 문을 열고 꺼낼 수 있는 크기는 다릅니다.
가령 선반 깊이가 40cm라고 해서 깊이 40cm 바구니를 고르면 손가락을 걸 공간이 부족합니다. 뒤까지 꽉 채우기보다 앞쪽에 3~5cm 정도 여유를 두면 꺼내기가 한결 편해요. 숫자는 제품과 손잡이 모양에 따라 달라지니, 종이상자로 비슷한 크기를 만들어 넣고 빼보는 방법도 좋습니다.
높은 선반에는 작은 물건을 낱개로 올리지 않습니다. 한 번에 내려올 수 있는 가벼운 바구니에 모으고, 무거운 세제나 냄비는 허리 아래쪽에 둡니다. 아이가 스스로 꺼내야 하는 물건이라면 아이 손이 닿는 높이인지도 따로 봐야 해요. 수납량을 조금 늘리는 것보다 매일 안전하고 편하게 꺼내는 일이 우선입니다.
수납용품은 물건의 종류보다 꺼내는 방식에 맞추세요
양말처럼 작고 자주 뒤섞이는 물건에는 서랍 칸막이가 효과적입니다. 다만 칸을 지나치게 잘게 나누면 세탁물을 넣을 때마다 모양을 맞춰야 해요. 저는 양말, 속옷, 잠옷 정도로만 구역을 나누고 남는 공간은 여유 있게 둡니다. 세탁 직후에도 부담 없이 넣을 수 있어야 유지됩니다.
깊은 선반에는 앞에서 뒤까지 당겨 꺼낼 수 있는 바구니가 잘 맞습니다. 투명 용기는 안의 물건이 보여 찾기 쉽지만 생활용품 포장이 한꺼번에 드러날 수 있어요. 불투명 용기를 쓴다면 앞면에 ‘약’, ‘건전지’처럼 짧게 표시하면 됩니다. 내용물을 전부 세세하게 분류한 표시는 물건이 바뀔 때 고치기 번거롭습니다.
주방에서는 모양보다 씻기 쉬운 재질을 봅니다. 기름기와 물기가 닿는 곳에 천 바구니를 두면 금방 관리가 어려워져요. 욕실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닥에 물이 고이는 용기보다 물이 빠지고 닦기 쉬운 형태가 편합니다. 같은 수납용품이라도 어디에 놓느냐에 따라 좋은 선택이 달라집니다.
예산은 자주 쓰는 한두 곳에 먼저 쓰는 편이 낫습니다
집 전체의 바구니를 같은 색으로 맞추면 보기에는 좋습니다. 하지만 써보기도 전에 열 개를 사면 크기나 손잡이가 불편해도 그대로 쓰게 되죠. 저는 먼저 가장 어수선한 자리 한 곳에 필요한 수납용품 한두 개만 놓습니다. 일주일 써보면 크기가 맞는지, 가족이 제자리에 돌려놓는지 금방 드러납니다.
예산이 넉넉하지 않다면 매일 여닫는 서랍의 칸막이, 자주 꺼내는 선반의 튼튼한 바구니처럼 손이 많이 가는 곳에 먼저 쓰세요. 계절용 이불이나 드물게 쓰는 물건에는 이미 집에 있는 상자를 활용해도 충분한 경우가 많습니다. 같은 돈이라도 사용 횟수가 많은 자리에 쓰면 체감하는 차이가 큽니다.
수납용품을 들인 뒤에도 공간을 끝까지 채우지는 않습니다. 물건은 늘고 줄고, 한 바구니에 무엇을 넣을지도 바뀌니까요. 선반 한 칸에 손을 넣을 틈이 남아 있고 가족이 별생각 없이 물건을 돌려놓을 수 있다면, 그 집에는 그 정도가 맞는 수납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