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수업에서 한 학생이 할머니의 말을 글에 옮기다가 손을 멈췄습니다. 집에서는 늘 듣던 말인데 사전에서 ‘방언’이라는 표시를 보자 잘못된 말처럼 느껴졌다는 겁니다. 그럴 때 저는 먼저 묻습니다. 그 말이 쓰인 자리에서 서로 뜻을 알아들었느냐고요. 지역에서 오랫동안 쓰여 온 말에는 그곳 사람들의 생활과 기억이 담겨 있습니다. 표준어인지 판단하는 일과 말의 가치를 판단하는 일은 구분해야 합니다.
방언이라는 표시는 무엇을 알려 줄까요?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은 방언과 사투리를 어느 한 지방에서 쓰는, 표준어가 아닌 말로 풀이합니다. 여기서 ‘표준어가 아니다’는 공통으로 쓸 말을 정해 놓은 기준에 들어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 말을 쓰는 사람이 국어를 잘못 배웠다는 판정이 아닙니다.
표준어 규정 제1항에는 표준어를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한다는 원칙이 있습니다. 여러 지역 사람이 함께 읽는 공문서나 교과서에 공통 기준이 필요한 까닭은 이해할 만합니다. 다만 이 원칙을 ‘서울에서 쓰는 말은 모두 표준어’로 받아들이면 곤란합니다. 국립국어원도 서울과 경기 지역에 방언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표준어는 지도를 놓고 경계를 그어 자동으로 결정하는 말이 아닙니다.
‘지역어’라는 이름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국립국어원은 이 말이 방언이나 사투리보다 표준어와 대비되는 느낌이 덜한, 비교적 중립적인 표현이라고 설명합니다. 실제로 국립국어원은 2004년부터 2020년까지 진행한 지역 언어 조사 사업에 ‘지역어’라는 말을 썼습니다. 이름 하나가 달라졌다고 말의 지위가 저절로 바뀌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지역의 말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영향을 줍니다.
멍게는 어떻게 표준어가 되었을까요?
방언과 표준어의 관계를 이야기할 때 저는 ‘멍게’와 ‘우렁쉥이’를 자주 꺼냅니다. 학생들은 대개 멍게를 먼저 알고, 우렁쉥이는 낯설어합니다. 그런데 원래 표준어였던 쪽은 우렁쉥이였습니다. 방언이었던 멍게가 더 널리 쓰이자 멍게도 표준어로 받아들여졌고, 우렁쉥이 역시 표준어로 남았습니다. 지금은 두 말을 모두 쓸 수 있습니다.
이 변화는 표준어 규정 제23항에 담긴 원칙으로 설명됩니다. 방언이던 단어가 기존 표준어보다 널리 쓰이게 되면 그 말을 표준어로 삼고, 원래의 표준어도 남겨 두는 것이 원칙입니다. ‘물방개’와 ‘선두리’, ‘애순’과 ‘어린순’도 규정 해설에 실린 사례입니다. 어느 말이 먼저 표준어였는지 알고 나면 낯선 단어를 외울 때도 이야기가 생깁니다.
늘 두 말이 함께 남는 것은 아닙니다. 제24항은 방언이 널리 쓰이는 동안 기존 표준어가 거의 쓰이지 않게 된 경우를 다룹니다. ‘빈대떡’이 대표적입니다. 예전의 표준어였던 ‘빈자떡’은 밀려났고, 방언이었던 ‘빈대떡’이 표준어로 남았습니다. 멍게와 빈대떡의 차이는 현재 두 형태를 모두 표준어로 쓸 수 있느냐에 있습니다. 단어의 이력을 알면 표기만 따로 암기할 때보다 이 차이가 오래 남습니다.
지역어 자료와 표준어 사전은 어떻게 읽을까요?
학생 글에 낯선 지역말이 나오면 저는 먼저 그 말의 뜻과 쓰인 지역을 확인합니다. 국립국어원의 ‘지역어 종합 정보’에서는 지역어를 찾아보고 지도에서 분포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말샘에서도 방언 정보를 찾을 수 있습니다. 같은 뜻으로 풀이되더라도 어느 지역에서 어떤 상황에 쓰였는지를 함께 읽어야 문장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다음에는 글의 목적을 봅니다. 할머니의 말을 그대로 옮긴 인터뷰나 소설 대사라면 지역어가 인물의 목소리를 살립니다. 반면 여러 지역의 독자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안내문이라면 표준어가 뜻을 고르게 전하는 데 유리합니다. 이때 필요한 질문은 ‘어느 말이 더 우월한가’가 아니라 ‘이 글에서 어떤 표현이 알맞은가’입니다.
주의할 점도 있습니다. 지역어 자료에 어떤 말이 실렸다는 사실만으로 그 말이 표준어라는 뜻은 아닙니다. 표준어 여부가 궁금하다면 표준국어대사전의 표제어와 풀이, 관련 규정을 따로 확인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반대로 표준어 사전에서 바로 찾지 못했다고 해서 가족이나 마을에서 쓰던 말을 지어낸 말로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두 자료는 확인하려는 질문이 다릅니다.
방언을 알면 글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교실에서는 방언을 ‘표준어로 고쳐 쓰기’ 문제로만 만날 때가 많습니다. 물론 공적인 글의 표기를 익히는 연습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면 왜 한 사물을 두고 서로 다른 이름을 불렀는지, 어떤 말이 널리 퍼져 표준어가 되었는지 볼 기회를 놓칩니다.
저는 낯선 지역말을 만났을 때 그 말을 쓴 사람과 장소를 먼저 떠올립니다. 그러고 나서 지금 쓰는 글에 알맞은 표현을 고릅니다. 멍게가 한때 방언이었다는 사실처럼, 말의 쓰임과 기준에는 시간이 쌓여 있습니다. 그 시간을 함께 읽으면 표준어도 방언도 훨씬 또렷하게 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