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담실에서 모유 수유 중인 부모님이 가장 자주 꺼내는 질문이 있어요. “이유식을 시작하면 젖을 줄여야 하나요?” 인터넷에는 월령별 시간표가 빼곡하지만, 막상 아기는 그 시간표대로 먹지 않지요. 두 아이를 키우고 8년째 산모 상담을 하면서 느낀 건, 첫 숟가락보다 먼저 맞춰야 할 건 부모의 기대치라는 점이에요.
시작은 생후 6개월 무렵, 아기의 자세도 함께 봐요
모유를 먹는 아기라면 이유식은 보통 생후 6개월 무렵 시작합니다. 질병관리청과 세계보건기구도 생후 6개월까지 모유 수유를 권하고, 이후에는 모유를 이어 가면서 이유식을 더하도록 안내해요. 생후 6개월이 되는 날 꼭 한 끼를 완성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달력과 함께 아기의 움직임을 보세요. 받쳐 주면 앉아 있을 수 있는지, 머리와 목을 안정적으로 가누는지, 숟가락이 다가오면 입을 여는지, 음식을 혀로 계속 밀어내지 않고 삼키는지가 시작 신호예요. 어른 밥상에 손을 뻗는 모습만으로 판단할 필요는 없어요. 아직 자세가 불안정하다면 며칠 더 지켜보며 소아청소년과에서 성장과 발달을 확인하는 편이 낫습니다.
미숙아로 태어났거나 성장에 대한 진료를 받고 있다면 달력상의 월령만 적용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아기의 발달과 영양 상태를 본 의료진과 시작 시기를 맞추세요.
모유는 그대로 이어 가고 이유식은 조금씩 더해요
이유식 첫날부터 수유 횟수를 줄일 필요는 없어요. 이름 그대로 모유에 더하는 음식입니다. 처음에는 아기가 컨디션 좋은 낮 시간에 한 번, 부드럽게 으깬 음식을 두세 숟가락 정도 내어 보세요. 먹는 양보다 숟가락을 받아들이고 삼키는 경험이 먼저예요. 한 숟가락만 먹고 고개를 돌려도 그날 식사는 거기서 끝내면 됩니다.
수유와 이유식 사이에 반드시 지켜야 하는 분 단위 간격도 없어요. 배가 너무 고파 울 때는 숟가락을 받아들이기 어렵고, 방금 충분히 먹었다면 관심이 없을 수 있지요. 평소 수유 사이에 아기가 편안하고 깨어 있는 시간을 골라 보세요. 이유식 뒤에 젖을 찾으면 평소처럼 먹여도 됩니다. 어느 쪽이 먼저여야 하는지보다 아기가 무리 없이 먹는 흐름이 중요해요.
저도 첫아이 때는 기록표의 빈칸이 신경 쓰였어요. 그런데 하루 섭취량은 잠이나 컨디션에 따라 달라집니다. 한 끼를 적게 먹었다고 다음 수유를 늦추거나 이유식을 억지로 더 먹일 필요는 없어요. 수유와 식사가 함께 자리 잡는 데에는 시간이 걸립니다.
첫 메뉴보다 놓치지 말아야 할 건 철분이에요
쌀죽만 오래 먹여야 한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어요. 쌀죽처럼 부드러운 음식으로 시작할 수 있지만, 그것만 몇 주씩 이어 갈 이유는 없습니다. 생후 6개월 무렵부터는 모유만으로 채우기 어려운 영양소가 생기고, 특히 철분 공급이 중요해져요. 질병관리청도 모유 수유 아기의 이유식에 철분이 풍부한 식품을 포함하도록 안내합니다.
처음 음식에 적응하면 잘 익혀 곱게 간 소고기나 철분 강화 영아용 곡류처럼 철분을 얻을 수 있는 식품을 차례로 더하세요. 채소와 과일도 먹여 보되, 달콤한 과일만으로 한 끼를 채우지는 않는 편이 좋습니다. 새 식품은 한 번에 하나씩 소량으로 시작하고 며칠간 피부와 배변, 구토 같은 변화를 살피면 무엇에 반응했는지 알아보기 쉬워요.
달걀이나 땅콩처럼 알레르기와 관련된 식품을 무조건 오래 미루는 방식은 권장되지 않아요. 다만 심한 습진이 있거나 이미 음식 알레르기를 진단받았다면 도입 방법을 소아청소년과와 상의해야 합니다. 땅콩을 줄 때도 통째로 주거나 되직한 땅콩버터를 한 숟가락 떠먹이는 방식은 피해야 해요.
준비물은 숟가락 하나부터, 먹는 자리는 안전하게
상담하다 보면 이유식 기계와 소분 용기를 먼저 잔뜩 샀다가 거의 쓰지 못한 분도 만나요. 처음에는 작은 숟가락, 씻기 편한 그릇, 아기가 몸을 세우고 앉을 수 있는 자리면 충분합니다. 집에 있는 도구로 부드럽게 익히고 으깰 수 있다면 전용 기계를 서둘러 살 필요도 없어요. 직접 만들기 버겁다면 아기 월령에 맞는 제품을 이용해도 괜찮습니다.
먹을 때는 눕히지 말고 곁에서 계속 지켜봐 주세요. 음식은 아기의 먹는 능력에 맞게 충분히 부드럽게 만들고, 통포도나 견과류처럼 목에 걸리기 쉬운 형태는 피해야 합니다. 돌 전에는 꿀을 주지 마세요. 이유식을 젖병에 타서 먹이는 것도 숟가락으로 먹는 연습을 대신하지 못합니다.
숟가락을 밀어내는 날이 이어지거나 수유량과 체중 증가가 함께 걱정된다면 혼자 양을 계산하며 버티지 말고 진료 때 이야기해 주세요. 모유를 잘 먹던 아기가 새 음식을 익히는 과정은 집집마다 속도가 달라요. 처음부터 그릇을 비우는 아기보다, 식탁에서 편안하게 한 입을 받아들이는 아기를 떠올리면 시작이 조금 가벼워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