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빌라 경매 물건을 보러 갔다가 입찰표도 쓰지 않고 돌아온 적이 있다. 역에서 걸어서 8분, 방 두 개에 엘리베이터까지 있었다. 감정가보다 낮아진 최저매각가격만 보면 손이 갈 만했다. 그런데 건물 앞에서 만난 중개업소 사장님은 같은 면적의 빌라가 몇 달째 팔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 말이 집에 와서 서류를 다시 펼쳐 보게 만들었다.
이하 금액은 당시 검토 과정을 설명하려고 바꾼 예시다. 입찰가는 2억 3,500만 원, 인근 거래가격은 2억 7,000만 원으로 놓았다. 겉으로는 3,500만 원 차이가 난다. 경매를 처음 보면 이 차이를 수익으로 받아들이기 쉬운데, 내 계산표에서는 출발점일 뿐이었다.
가격보다 먼저 임차인의 날짜를 봤다
법원경매정보에서 매각물건명세서, 현황조사서, 감정평가서를 나란히 열었다. 등기사항증명서에는 근저당권 설정일이 있었고, 현황조사서에는 점유자가 적혀 있었다. 임차인 보증금은 1억 4,000만 원. 서류상 전입일은 근저당권 설정일보다 앞섰다. 이 대목에서 ‘근저당권이 경매로 지워지니 깨끗한 집’이라고 적어 둔 메모를 바로 지웠다.
주택 임차인의 대항력은 집을 인도받고 주민등록을 마친 다음 날부터 문제 된다. 확정일자와 배당요구 여부도 따로 봐야 한다. 국가법령정보센터에 실린 주택임대차보호법과 판례를 보면, 대항력 있는 임차인이 배당에서 보증금 전액을 받지 못한 경우 남은 금액을 매수인에게 주장할 수 있는 상황이 있다. 전입일 한 줄만으로 인수액을 확정할 수 없는 이유다.
이 물건은 임차인의 실제 점유, 확정일자, 배당요구 내용까지 맞춰 봐야 했다. 현황조사서에 적힌 말도 조사 당시의 내용이다. 입찰 직전 등기와 사건 기록이 바뀌었는지 다시 확인하는 습관을 들인 뒤로, 오래전에 내려받은 서류만 들고 법원에 가는 일은 없어졌다.
보증금 3,000만 원이 남으면 계산이 뒤집힌다
예시에서 임차인이 배당으로 1억 1,000만 원을 받고, 나머지 3,000만 원을 매수인이 부담해야 하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2억 3,500만 원에 낙찰받아도 집에 들어간 돈은 벌써 2억 6,500만 원이다. 인근 거래가격 2억 7,000만 원과의 차이는 500만 원으로 줄어든다. 취득 비용이나 수리비를 넣기도 전이다.
물론 실제 배당액은 이 숫자처럼 미리 정해져 있지 않다. 선순위 권리와 세금, 배당요구 내역을 사건별로 확인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배당표를 낙관해서 입찰가를 올리지 않는다. 보증금 잔액을 감당할 수 있는지 먼저 따져 보고, 자료만으로 인수 위험을 가늠하기 어려우면 그 물건은 넘긴다. 싸게 낙찰받는 것보다 낙찰 뒤 내 돈이 얼마나 더 들어가는지 아는 게 중요했다.
같은 동네 빌라도 팔리는 가격은 다르다
시세를 볼 때 가장 조심하는 숫자는 매물에 붙은 호가다. 호가 3억 원짜리가 여러 개 있어도 3억 원에 팔렸다는 뜻은 아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서 같은 동네, 비슷한 전용면적과 준공연도의 거래를 찾고 거래 시점도 본다. 빌라는 같은 골목에서도 층, 주차, 엘리베이터, 건물 관리 상태에 따라 손님 반응이 꽤 다르다.
그날 본 집은 낮에도 거실에 불을 켜야 할 만큼 어두웠다. 주차 공간은 서류의 대수보다 실제 차를 대는 모습이 더 복잡했고, 외벽에는 보수한 흔적이 있었다. 감정평가서 사진만으로는 잘 보이지 않던 부분이다. 비교 거래가 2억 7,000만 원이라 해도 그 집이 비슷한 상태인지 확인해야 한다. 나는 매도할 때 받을 금액을 잡으면서 이 차이를 이유 없이 지우지 않는다.
중개업소에도 한 군데만 묻지 않았다. 최근 어떤 집이 얼마에 팔렸는지, 지금 나온 물건은 왜 안 팔리는지 물었다. 답을 그대로 믿기보다 공개된 거래 내역과 현장 상태를 맞춰 보는 편이다. 거래가 드문 빌라일수록 한 건의 높은 가격을 내 물건의 시세로 옮겨 적기 쉽다.
대출과 명도까지 넣으니 남는 돈이 없었다
예시 계산표에 취득세 등 취득 비용 450만 원, 누수와 도배 등 수리비 1,200만 원, 이사 협의와 보유 기간에 쓸 돈 700만 원을 잠정으로 적었다. 보증금 잔액 3,000만 원을 인수하는 가정이라면 총투입액은 약 2억 8,850만 원이다. 2억 7,000만 원에 판다고 해도 매도 비용과 양도 관련 세금을 넣기 전에 이미 1,850만 원이 부족하다. 세율은 보유 주택 수와 취득 당시 조건 등에 따라 달라지므로, 여기 적은 450만 원을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는 없다.
경락잔금대출도 입찰 전에 금융기관에 물었다. 상담 단계에서 들은 가능 금액을 내 돈처럼 계산하지 않으려고 한다. 담보 평가와 개인의 대출 조건에 따라 실제 실행액이 달라질 수 있고, 잔금 납부 일정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대출이 예상보다 적게 나오면 그 차액을 마련할 현금이 있어야 한다.
명도 역시 달력에 넣었다. 민사집행법에는 대금을 낸 매수인이 6개월 이내에 부동산 인도명령을 신청할 수 있는 절차가 있지만, 신청만 하면 사람이 저절로 나가는 것은 아니다. 점유자의 권리와 상황을 확인하고 대화할 시간, 필요한 비용을 잡아야 한다. 특히 보증금 반환 문제가 남은 임차인에게 빈집 인도만 재촉하는 식으로는 일이 풀리지 않는다.
그날 입찰표를 접은 이유
몇 번 유찰된 서울 빌라 경매는 가격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그 물건은 임차인 보증금의 인수 가능성, 실제로 팔릴 가격, 수리와 명도에 드는 시간을 함께 놓자 여유가 없었다. 입찰장에서 남들이 얼마를 쓰는지 궁금했지만 내 계산표의 빈칸이 더 신경 쓰였다.
이후에도 비슷한 집을 볼 때마다 매각물건명세서와 등기, 점유 상황을 맞춰 보고 현장에서 팔릴 모습을 상상한다. 숫자가 맞지 않으면 발길을 돌린다. 경매에서 내가 지켜 온 돈 중에는 낙찰받지 않아서 남은 돈도 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