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월에 여행지를 고를 때면 바다보다 그 바다를 끼고 살아가는 동네가 먼저 떠오른다. 겨울에는 걷는 사람이 줄어 골목의 작은 소리까지 들린다. 가게 문 여는 소리, 언덕을 오르는 발소리 같은 것들. 국내 1월 여행지 추천 목록에 늘 나오는 전망대 대신, 천천히 걸었던 세 동네를 적어본다. 사람이 적은 편이어도 모두 누군가의 생활 터전이라는 점은 잊지 않으려고 했다.
강릉 명주동은 바다를 보기 전 걷기 좋았다
강릉에 가면 으레 바다부터 향했는데, 명주동을 걷고 나서는 순서가 바뀌었다. 강릉역에서 시내 쪽으로 이동해 강릉대도호부 관아를 먼저 찾으면 길을 잡기 쉽다. 관아 주변에서 남문로 골목으로 들어가 명주예술마당 쪽을 둘러본 뒤 임당동성당까지 걸었다. 한국관광공사가 소개하는 명주동 산책길도 관아와 성당, 골목의 문화 공간을 함께 잇는다.
이 동네는 굽이마다 풍경이 크게 바뀌지 않는다. 낮은 건물 사이에 작은 가게와 오래된 집이 이어지고, 골목을 빠져나오면 다시 시내의 차 소리가 들린다. 솔직히 화려한 장면을 기대하면 심심할 수 있다. 저는 그 점이 좋았다. 추운 날에는 관아 주변을 잠깐 걷고 실내에서 몸을 녹인 뒤 다시 나오는 식으로 속도를 늦췄다. 문 닫은 가게도 있으니 특정 공간 하나를 목표로 잡기보다 동네 자체를 걷는 편이 마음이 편하다.
목포 서산동에서는 언덕을 천천히 올랐다
목포 서산동 시화골목은 좁은 길과 가파른 계단이 먼저 기억난다. 보리마당로 쪽에서 골목 입구를 찾아 올라가면 벽에 적힌 시와 그림이 하나씩 나타난다. 조금 더 올라 보리마당 골목으로 이어 걸으면 낮은 지붕 너머로 항구 쪽 풍경이 열린다. 목포시 안내에도 두 골목이 이어진다고 나온다. 한 지점에서 사진만 찍고 돌아서기보다, 올라온 길을 천천히 되짚으며 집과 골목의 높낮이를 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이곳은 관광용으로 비워 둔 거리가 아니다. 실제로 주민이 사는 집 사이를 지나간다. 창문 안쪽을 찍거나 대문 앞에 오래 서 있지 않았고, 일행과 이야기할 때도 목소리를 낮췄다. 계단은 겨울 비나 눈 뒤에 미끄러울 수 있어 밑창이 편한 신발이 낫다. 바람이 센 날에는 골목 위에서 오래 버티기보다 내려와 따뜻한 밥을 먹는 쪽이 좋았다. 목포의 겨울은 바다를 멀리서 바라보는 순간에도 충분히 남는다.
군산 월명동은 유명한 거리에서 한 블록만 벗어났다
군산 원도심은 이름난 가게 앞에 사람이 모이기 쉽다. 그래서 저는 내항이나 근대역사박물관 주변을 지나 월명동 안쪽 길로 접어들었다. 동국사 방향으로 걷다가 시간이 남으면 말랭이마을 쪽 언덕을 더해도 좋다. 한국관광공사도 시간여행마을과 말랭이마을을 잇는 도보 코스를 소개한다. 큰길에서는 관광지에 온 느낌이 나다가, 골목에 들어서면 주민의 일상과 오래된 건물이 가까워진다.
군산의 건물을 그저 예쁜 옛 풍경으로만 보고 싶지는 않았다. 원도심에 남은 근대 건축물에는 식민지 시기의 역사도 겹쳐 있다. 걷다가 궁금해진 이야기는 박물관 전시에서 조금 더 읽었다. 실내를 넣으면 추운 날 쉬어 가기도 쉽다. 다만 전시관 운영 시간과 휴관일은 바뀔 수 있으니 출발 전에 확인하는 편이 안전하다. 골목 산책은 문이 닫혀 있어도 이어 갈 수 있다는 점에서 부담이 적었다.
1월 골목 여행은 욕심을 덜 낼수록 좋았다
세 동네를 하루에 묶을 필요는 없다. 강릉은 평평한 시내 산책을 원할 때, 목포는 항구가 보이는 언덕길을 걷고 싶을 때, 군산은 골목과 근대사를 함께 보고 싶을 때 어울렸다. 저는 한 동네에 두세 시간쯤 남겨 두고 길을 정했다. 겨울에는 해가 짧고 손이 금세 시려서, 장소를 여러 개 찍는 일정은 생각보다 피곤했다.
사람이 적은 곳을 찾는다고 해서 골목이 늘 조용한 것은 아니다. 주말이나 행사 날에는 분위기가 달라지고, 작은 가게는 예상보다 일찍 문을 닫기도 한다. 그래서 1월에는 밝은 시간에 걷고, 따뜻하게 쉴 곳을 하나쯤 마음에 두는 편이다. 돌아오는 길에 기억나는 건 유명한 장면보다 동네의 평범한 오후였다. 그런 시간이 오래 남아서, 다음 겨울에도 저는 골목으로 먼저 발길을 돌릴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