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상가 경매 물건을 보러 갔다가 입찰표를 접은 적이 있습니다. 법원 자료에는 1층 점포, 역에서 도보 5분, 최저가 3억 8천만 원. 사진만 보면 탐날 만했죠. 그런데 평일 점심과 저녁에 다시 가보니 셔터가 내려간 점포가 여럿이었고, 경매 대상 점포 안에는 임차인의 집기가 그대로 있었습니다. 싸게 사는 것보다 먼저 확인할 일이 많았습니다.
1층이라는 말만 믿고 임대료를 잡으면 틀립니다
상가 시세를 볼 때 저는 같은 건물의 호가부터 믿지 않습니다. 중개업소 세 곳에서 실제로 임대가 성사된 금액과 빈 점포가 얼마나 오래 남아 있는지를 묻습니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둔 점포도 횡단보도 위치, 출입문 방향, 배달 오토바이 정차 공간에 따라 임대료가 달라집니다. 점심 장사가 되는 골목인지, 퇴근길 수요가 있는지도 시간대를 바꿔 걸어봐야 보입니다.
예를 들어 낙찰가 3억 8천만 원에 월세 180만 원을 예상하면 연 임대료는 2,160만 원, 낙찰가 대비 약 5.7%입니다. 숫자가 꽤 좋아 보이죠. 하지만 6개월 비면 그해 임대료는 1,080만 원으로 줄어듭니다. 취득세와 등기 비용, 중개수수료, 수선비, 대출이자는 아직 빼지도 않았습니다. 이 계산은 특정 물건의 수익률이 아니라, 공실 하나가 수익을 얼마나 바꾸는지 보여주는 가정입니다.
현장에서는 주변 점포의 업종도 봅니다. 같은 카페가 세 집 붙어 있는데 새 임차인에게 높은 월세를 받을 수 있다고 가정하면 위험합니다. 관리비가 월세와 별도로 얼마인지, 간판을 달 수 있는 자리인지, 음식점 영업을 생각한다면 배기와 급배수 공사가 가능한지도 확인합니다. 임차인을 구할 수 있는 점포인지가 먼저고, 월세 숫자는 그다음입니다.
사업자등록 날짜 하나가 보증금 계산을 바꿉니다
서울 상가 경매에서 제가 가장 오래 붙잡는 서류는 매각물건명세서, 현황조사서, 등기사항증명서입니다. 세 서류에 적힌 임차인 이름과 점유 부분, 보증금, 날짜가 서로 맞는지 대조합니다. 법원경매정보에 올라온 감정평가서도 보지만, 감정가가 현재 임대료나 점포 상태까지 보장해 주지는 않습니다.
상가 임차인의 대항력은 건물 인도와 사업자등록 신청을 갖춘 다음 날부터 생길 수 있습니다. 확정일자는 경매대금에서 보증금을 우선 변제받는 권리와 관련됩니다. 둘은 같은 날짜가 아닐 수 있어요. 가령 임차인이 2019년에 점포를 인도받고 사업자등록을 신청했는데 근저당권은 2020년에 설정됐다면, 저는 보증금이 낙찰자에게 얼마나 남을 수 있는지부터 따집니다. 배당요구 여부와 실제 배당액까지 확인해야 하므로 날짜 하나만 보고 인수액을 단정하지 않습니다.
서류에 임차인이 없다고 적혀 있어도 현장에 영업 중인 사람이 있으면 그냥 넘기지 않습니다. 상호가 바뀌었는지, 전차인이 있는지, 점유하는 면적이 서류와 같은지 확인할 단서가 생긴 겁니다. 상가건물임대차현황서의 사업자등록 신청일과 정정신고일도 구별해서 봐야 합니다. 날짜나 점유 관계가 끝내 설명되지 않는 물건이라면 초보에게는 입찰을 쉬는 편이 낫다고 말합니다.
낙찰 뒤 점포를 비우는 시간도 비용입니다
상가 명도는 열쇠를 받는 날 끝나는 일이 아닙니다. 영업 중인 임차인에게는 재고, 시설, 거래처가 걸려 있습니다. 점포가 비어 보여도 집기나 폐기물이 남아 있을 수 있죠. 낙찰 전에 밖에서 확인할 수 있는 범위의 점유 상태와 출입 동선을 기록해 두고, 낙찰 후에는 상대방의 권리를 확인한 뒤 인도 일정과 남은 물건의 처리를 협의합니다.
민사집행법상 매수인은 대금을 낸 뒤 6개월 이내에 인도명령을 신청할 수 있지만, 매수인에게 대항할 권원이 인정되는 점유자에게는 그 절차로 인도를 구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입찰가에 명도 기간을 반영합니다. 월세 180만 원을 기대하며 한 달 지연 비용을 0원으로 놓을 수는 없거든요. 협의가 길어질 가능성이 있다면 이자와 관리비, 공실 기간을 넉넉히 잡습니다.
대출 가능액을 듣기 전에는 최고가를 쓰지 않습니다
경락잔금대출은 낙찰가의 몇 퍼센트가 무조건 나온다는 식으로 계산하지 않습니다. 물건의 위치와 용도, 임대 상태, 감정과 담보 평가, 차주의 소득과 기존 대출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저는 입찰 전에 금융기관에 물건 자료를 보여주고 가능 범위와 필요한 자기자금을 확인합니다. 잔금 납부 기한에 돈이 맞지 않으면 예상 수익률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입찰가 상한을 잡을 때는 낙찰가에 취득 관련 세금과 등기 비용, 수선비, 예상 공실 비용, 명도 비용을 더합니다. 세금은 취득 형태와 물건의 성격에 따라 달라지니 물건별로 확인합니다. 팔 때 낼 세금과 중개 비용도 출구 가격에서 빼야 하고요. 처음 보았던 3억 8천만 원짜리 점포는 서류상 임차 관계를 현장 점유와 맞춰 설명하기 어려웠고, 주변 공실도 길었습니다. 그래서 그날은 입찰하지 않았습니다. 서울이라는 주소보다 제가 감당할 수 있는 권리와 비용인지가 제 입찰표를 결정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