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좁은 욕실을 봤는데, 수납장 문을 열 때마다 사람이 세면대 앞에서 한 걸음 물러나야 했습니다. 장 안은 넉넉했지만 매일 쓰기에는 불편했죠. 욕실 수납장 교체를 앞두고 있다면 디자인보다 먼저 문이 열리는 자리와 손이 닿는 높이를 봐야 합니다. 예쁜 문짝도 아침마다 어깨에 걸리면 오래 만족하기 어렵거든요.
새 장을 고르기 전에 세면대 앞에 서보세요
욕실에서 자주 쓰는 물건은 생각보다 적습니다. 칫솔, 치약, 세안제, 면도기처럼 매일 꺼내는 것과 여분의 휴지, 세제처럼 가끔 꺼내는 것을 나눠 보세요. 매일 쓰는 물건이 손 닿는 선반에 들어갈 만큼이면 충분합니다. 여분까지 전부 넣으려고 장을 키우면 거울이 너무 높아지거나 문이 몸에 부딪히는 일이 생깁니다.
기존 장의 가로·세로·깊이를 재고, 문을 끝까지 열었을 때 벽이나 샤워기와 닿는지도 확인합니다. 줄자로 장만 재지 말고 세면대 끝에서 벽까지의 거리, 수전 위로 손을 움직일 공간도 함께 보세요. 깊이가 몇 센티미터 늘어나는 것만으로 세수할 때 머리를 숙일 자리가 답답해질 수 있습니다. 가족 중 키가 가장 작은 사람이 거울을 편하게 볼 수 있는 높이인지도 중요하고요.
사진을 찍어두면 선택이 쉬워집니다. 문을 연 모습, 장 안에 물건을 넣은 모습, 세면대와 샤워 구역이 함께 보이는 모습을 남겨두세요. 매장이나 시공 업체에 치수만 말하는 것보다 실제로 어디가 불편한지 전달하기 좋습니다.
거울장과 일반 수납장은 쓰는 습관이 다릅니다
세면대 위에 별도 거울을 둘 자리가 없다면 거울장이 공간을 덜 차지합니다. 다만 거울 표면에 손자국과 물방울이 잘 보이니, 문을 자주 여닫는 집에서는 닦는 일이 늘 수 있습니다. 거울장이 깊고 튀어나와 있으면 세면대 앞에서 얼굴을 숙일 때 거슬리기도 합니다.
이미 마음에 드는 거울이 있다면 얕은 벽장이나 세면대 하부장을 검토할 만합니다. 벽장은 자주 쓰는 작은 물건을 꺼내기 편하고, 하부장은 부피가 큰 여분을 숨기기 좋습니다. 대신 하부장은 배수관이 지나가는 자리를 빼고 실제로 물건이 들어갈 공간을 봐야 합니다. 겉에서 보기에는 커도 안쪽 절반을 배관이 차지하는 경우가 있으니까요.
여닫이문이 답답한 구조라면 문이 어느 쪽으로 열리는지부터 확인하세요. 오른손으로 칫솔을 꺼내는 자리인데 문이 그쪽 동선을 막으면 매일 손을 돌아 써야 합니다. 슬라이딩 문은 앞쪽 여유 공간이 적을 때 편하지만, 문을 한쪽으로 밀어야 반대편 물건을 꺼낼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동시에 세면대를 쓰는 집이라면 이 차이가 꽤 큽니다.
습기 많은 욕실에서는 안쪽까지 보세요
수납장은 겉면보다 모서리와 경첩에서 먼저 사용감이 드러납니다. 전시품을 볼 때 문을 몇 번 열고 닫아 보세요. 경첩이 흔들리지 않는지, 선반 높이를 바꿀 수 있는지, 젖은 손으로 잡는 손잡이를 닦기 쉬운지 확인하면 됩니다. 칸이 너무 잘게 나뉜 장은 처음엔 가지런해 보여도 키 큰 세안제나 새로 산 물건을 넣기 어려울 수 있어요.
표면이 매끈해도 판재의 절단면이나 나사 구멍 주변이 물에 오래 노출되면 손상될 수 있습니다. 특히 샤워 물이 직접 튀는 자리에 장을 둘 계획이라면 판매자나 시공 업체에 해당 제품을 그 위치에 설치해도 되는지 확인하세요. 제품 설명의 ‘방수’라는 말만 보고 욕실 어디에나 달 수 있다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환기가 잘 안 되는 집이라면 바닥이나 벽과 닿는 자리도 닦고 말리기 쉬운 형태가 편합니다.
예산을 쓴다면 장식적인 손잡이보다 문 여닫힘과 설치 상태에 먼저 쓰는 편이 낫습니다. 같은 가격대라면 선반을 조절할 수 있고 경첩 교체가 쉬운 장이 오래 쓰기 좋습니다. 색은 욕실 타일과 정확히 맞추려 애쓰기보다 기존 수전, 거울, 선반과 함께 봤을 때 눈에 거슬리지 않는 쪽이 실패가 적습니다.
교체 당일에는 벽 상태를 꼭 확인해야 합니다
기존 장을 떼고 나면 가려져 있던 타일 구멍이나 변색이 드러날 수 있습니다. 새 장의 크기만 보고 주문하기 전에 기존 고정 위치를 확인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새 장으로 자국을 가릴 수 있는지, 보수할 부분이 있는지 시공 전에 이야기해 두면 현장에서 급하게 결정할 일이 줄어듭니다.
벽에 구멍을 새로 뚫어야 한다면 타일 뒤 배관이나 전선 위치, 벽의 고정 상태를 확인해야 합니다. 장은 물건을 넣으면 생각보다 무거워집니다. 특히 오래된 욕실이나 벽 상태를 알기 어려운 집에서는 설치 가능 여부를 시공자와 먼저 확인하는 게 안전합니다. 설치를 마친 뒤에는 문이 끝까지 열리는지, 장이 흔들리지 않는지, 세면대에서 물을 쓸 때 불편한 곳이 없는지 직접 움직여 보세요.
수납장이 바뀌었다고 물건을 전부 다시 채울 필요는 없습니다. 매일 쓰는 것만 가장 편한 칸에 두고, 여분은 한곳에 모아두면 새 장의 공간이 오래 유지됩니다. 제가 욕실 수납장 교체에서 가장 좋아하는 순간도 설치 직후의 반짝이는 모습보다, 몇 달 뒤에도 가족이 별생각 없이 편하게 쓰는 모습을 볼 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