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매 물건을 보러 다니다 보면 등기부에 남은 임차권등기를 종종 봅니다. 그때마다 보증금을 못 받은 채 이사를 준비했을 세입자가 떠오릅니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당장 나갈 집의 보증금도 급한데, 신청 비용까지 걱정될 수밖에 없죠. 그런데 현장에서 더 크게 손해 보는 경우는 몇만 원을 아끼려다 이사 순서를 잘못 잡았을 때입니다.
직접 신청할 때 드는 돈은 얼마일까
찾기쉬운 생활법령정보가 제시한 예시는 임대인 1명, 임차인 1명, 주택 1개를 기준으로 총 4만 3,400원입니다. 수입인지 2,000원, 등기수입증지 3,000원, 송달료 3만 1,200원, 등록면허세와 지방교육세 7,200원을 더한 금액입니다. 송달료는 1회 5,200원을 기준으로 당사자 두 명에게 각각 3회분씩 계산한 예시입니다.
이 숫자를 모든 신청에 그대로 대입하면 곤란합니다. 임대인이나 임차인이 여러 명이면 송달료 계산이 달라지고, 부동산 수나 접수 시점의 수수료도 확인해야 합니다. 실제 납부액은 접수 과정에서 관할 법원이나 대한민국 법원 전자소송포털의 안내를 기준으로 확인하는 게 정확합니다. 위 금액은 비용의 규모를 가늠하는 출발점으로 보시면 됩니다.
직접 서류를 준비한다면 법원에 내는 비용 외에도 등기사항증명서 발급비나 서류 준비에 드는 소액의 지출이 생길 수 있습니다. 법무사에게 맡기면 보수도 별도로 붙습니다. 몇만 원짜리 신청이라고 들었는데 견적이 훨씬 크게 나온다면, 법원 납부액과 대행 보수를 나눠서 확인해야 합니다.
신청보다 먼저 확인할 두 가지
첫째는 계약이 끝났는지입니다. 임차권등기명령은 임대차가 종료됐는데 보증금 전부 또는 일부를 돌려받지 못했을 때 신청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이사 날짜가 다가왔다는 이유만으로 신청 요건이 갖춰지는 건 아닙니다. 계약 만료일과 갱신 거절 통지가 어떻게 이뤄졌는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집주인과 종료일을 따로 합의했다면 그 내용을 남겨 두는 편이 좋습니다.
둘째는 등기가 실제로 끝났는지입니다. 신청서를 냈다는 사실과 등기부에 임차권등기가 기재됐다는 사실은 다릅니다. 기존에 갖춘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을 유지한 채 이사하려면 등기 완료를 확인하고 전출과 주택 인도를 진행하는 순서가 안전합니다. 급하게 이사해야 하는 사정이 있다면 날짜를 혼자 판단하지 말고 사건 진행 상태를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서류를 준비할 때는 임대차계약서, 보증금 지급 내역, 계약 종료를 보여 주는 자료, 반환을 요구한 기록을 한데 모아 둡니다. 주소와 보증금 액수, 임대인 표시가 서로 맞는지도 봐야 합니다. 보정이 나오면 처리 시간이 늘어날 수 있고, 그 사이 이사 일정은 더 촉박해집니다.
등기만 하면 보증금이 들어오는 건 아니다
제가 경매 현장에서 본 사례를 바탕으로 가정을 하나 해보겠습니다. 보증금 1억 원을 못 받은 세입자가 이사를 앞두고 임차권등기를 마쳤습니다. 이 등기는 이미 확보한 권리를 이사 후에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렇다고 집주인 계좌에서 1억 원이 자동으로 빠져나오는 절차는 아닙니다. 반환이 계속 미뤄지면 보증금반환청구 등 별도의 회수 절차를 검토해야 합니다.
권리의 순서도 따져야 합니다. 원래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을 갖고 있었다면 임차권등기 후 이사를 가도 그 권리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반면 그 전에는 권리를 갖추지 못했다면 임차권등기가 마쳐진 시점을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앞서 설정된 담보권까지 거슬러 올라가 이기는 건 아닙니다. 경매 물건의 등기부를 볼 때 제가 임차권등기 날짜만 보지 않고 전입일, 확정일자, 근저당권 설정일을 함께 보는 이유입니다.
집주인에게 비용을 청구할 수 있을까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임차권등기명령 신청과 그에 따른 임차권등기에 든 비용을 임대인에게 청구할 수 있도록 합니다. 신청할 때는 세입자가 먼저 납부하더라도, 납부 영수증과 지출 내역을 보관해 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다만 청구할 수 있다는 것과 곧바로 돈을 받는다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집주인이 보증금조차 돌려주지 않는 상황이라면 비용도 별도로 요구해야 할 수 있습니다.
법무사 보수까지 생각하고 있다면 계약 전 견적의 항목을 확인하는 게 좋습니다. 법에서 말하는 신청·등기 관련 비용과 내가 선택한 대행 서비스의 비용을 같은 것으로 단정하면 다툼이 생길 수 있습니다. 직접 진행할 수 있는 사안인지, 서류나 권리관계가 복잡해 도움을 받아야 할 사안인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집니다.
임차권등기명령 비용은 보증금 규모에 비하면 작아 보입니다. 그래도 보증금을 못 받은 사람에게는 그 돈도 부담입니다. 제가 이 절차에서 먼저 보는 것은 영수증 합계보다 계약 종료가 분명한지, 기존 권리를 언제 갖췄는지, 등기가 끝난 뒤 이사하는지입니다. 순서를 지켜야 몇만 원을 쓰고도 더 큰돈을 잃는 일을 피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