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상식이 끝나면 수상작을 관람 목록에 몇 편씩 적어둡니다. 그런데 막상 한 편을 고르려면 작품상, 대상, 감독상이 각각 무엇을 가리키는지부터 헷갈리더군요. 2026년 5월 열린 제62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도 그렇습니다. 작품상은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 대상은 <왕과 사는 남자>에 출연한 유해진 배우, 감독상은 <세계의 주인>을 연출한 윤가은 감독에게 돌아갔습니다. 세 작품은 같은 시상식에서 주목받았지만 관람할 때 기대할 재미는 꽤 다릅니다.
작품상과 대상, 같은 영화를 뜻할까요?
백상예술대상 공식 안내에 따르면 영화 부문은 국내에서 개봉하거나 공개된 한국 장편영화를 대상으로 합니다. 영화상에는 작품상과 대상 외에도 감독상, 연기상, 각본상, 예술상 등이 있습니다. 수상 목록을 볼 때 먼저 확인할 점은 상의 이름 옆에 적힌 수상 주체입니다. 제62회 작품상은 영화 <어쩔수가없다>가 받았고, 영화 부문 대상 수상자는 유해진 배우입니다. 대상 수상작이라는 말만 보고 <왕과 사는 남자>가 작품상까지 받았다고 생각하면 실제 결과와 어긋납니다.
또 수상 경력이 취향에 맞는다는 보증은 아닙니다. 작품상 수상작의 분위기를 기대하고 영화를 골랐는데, 정작 자신이 보고 싶은 건 배우의 감정선이나 익숙한 역사 이야기일 수 있죠. 상은 영화를 찾는 출발점으로 두고, 소재와 표현 방식까지 한 번 더 보는 편이 좋습니다.
<어쩔수가없다>는 어떤 마음으로 보면 좋을까요?
<어쩔수가없다>는 실직한 인물이 다시 일자리를 얻으려는 과정을 따라가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입니다. 출발점은 집과 직장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라 낯설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절박함이 향하는 방향은 편안한 재취업 이야기를 기대한 관객에게 당혹스러울 수 있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 웹매거진에 실린 영화인들의 대화에서도 인물에게 쉽게 감정을 이입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다뤄졌습니다. 이 평가는 영화를 보는 한 가지 관점이지, 모든 관객의 반응을 대신하지는 않습니다.
관람 전에는 주인공을 응원할 수 있는지보다, 그가 자기 행동을 어떻게 정당화하는지에 관심을 두면 작품의 분위기를 짐작하기 쉽습니다. 집과 직장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지만 표현에는 불편한 웃음과 과장이 섞여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서 화면 구성과 인물의 선택을 함께 보는 걸 좋아한다면 흥미로울 만합니다. 반대로 인물에게 오래 마음을 붙일 수 있는 드라마를 찾는 날이라면 기대를 조금 조절하는 게 좋겠습니다.
<왕과 사는 남자>는 역사를 얼마나 알아야 할까요?
장항준 감독의 <왕과 사는 남자>는 영월에 유배된 단종 이홍위와 마을 촌장 엄흥도의 만남에 집중합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소개한 장항준 감독의 인터뷰를 보면, 엄흥도는 마을을 살리고 싶어 유배지를 자처하지만 그곳에 온 사람은 왕위에서 밀려난 이홍위입니다. 유해진은 엄흥도, 박지훈은 이홍위를 연기합니다. 제62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유해진은 영화 부문 대상을, 박지훈은 영화 부문 남자 신인 연기상을 받았습니다.
단종의 유배라는 역사적 배경을 알고 있으면 인물들이 처한 상황이 더 빨리 들어옵니다. 다만 세부 사건을 미리 공부해야만 따라갈 수 있는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는 없습니다. 관람할 때는 역사 기록을 그대로 옮겼는지보다, 촌장과 유배된 왕의 관계가 어떻게 변하는지 보는 편이 자연스럽습니다. 이야기가 향하는 비극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만큼, 가벼운 사극을 생각하고 고른다면 정서가 예상보다 묵직할 수 있습니다.
<세계의 주인>은 왜 함께 눈여겨볼까요?
윤가은 감독이 영화 부문 감독상을 받은 <세계의 주인>은 앞의 두 작품과 크기부터 다릅니다. 영화진흥위원회 소개에 따르면 졸업을 앞둔 고등학생 주인이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과 현실의 벽을 마주하는 이야기입니다. 전교생이 참여한 서명운동에 혼자 동참하지 않는 선택이 중요한 출발점이 됩니다. 사건의 답을 서둘러 찾기보다, 주변 사람들이 그 선택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따라가는 영화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을 고를 때는 빠른 전개보다 인물의 말과 침묵을 볼 마음이 드는지가 중요합니다. 윤가은 감독의 전작 <우리들>, <우리집>에서 아이들의 관계를 눈여겨봤다면 이번에는 성장의 끝자락에 선 인물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반면 사건이 계속 커지는 영화를 기대한다면 호흡이 느리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청소년을 중심에 둔 이야기지만 어른들이 타인의 선택을 얼마나 쉽게 판단하는지도 돌아보게 합니다.
세 작품 중 첫 편을 고른다면 취향을 기준으로 삼겠습니다. 불편한 웃음과 인물의 선택을 오래 생각하고 싶다면 <어쩔수가없다>, 배우들이 쌓아가는 관계와 역사극의 감정을 보고 싶다면 <왕과 사는 남자>, 한 사람을 바라보는 여러 시선을 따라가고 싶다면 <세계의 주인>이 어울립니다. 같은 백상예술대상 영화 수상 목록에서도 이렇게 서로 다른 관람 경험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이 올해 결과의 재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