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부모님과 강릉 명주동 골목을 걸었는데, 두 분이 가장 오래 머문 곳은 이름난 바닷가가 아니었다. 오래된 집 앞 작은 화단에서 걸음을 늦추고, 골목 안 가게를 들여다보던 시간이었다. 부모님 효도여행 국내 여행지를 고를 때 풍경만큼 중요한 게 있다는 걸 그날 다시 느꼈다.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길이었다.
명주동은 강릉의 옛 중심지다. 강릉대도호부 관아와 임당동성당, 오래된 주택을 고쳐 쓰는 공간이 가까이 있다. 한국관광공사도 이 일대를 골목과 문화 공간을 함께 걷는 동네로 소개한다. 다만 조용하다는 말만 믿고 주말 한낮에 가면 기대와 다를 수 있다. 우리는 일정 사이에 명주동을 끼워 넣는 대신, 이 동네를 하루의 중심에 놓았다.
바다보다 먼저 골목으로 간 이유
부모님과 함께라면 강릉에 도착하자마자 바다로 향하고 싶어진다. 그런데 사람이 몰리는 곳에서 주차하고 식당 줄을 기다리다 보면 정작 이야기를 나눌 힘이 남지 않는다. 이번에는 강릉역에서 명주동 쪽으로 이동해 관아를 먼저 보고, 골목을 천천히 걷는 순서로 잡았다. 기차로 왔다면 역에서 걷는 거리까지 욕심내기보다 택시로 첫 지점까지 이동하는 편이 덜 피곤하다.
강릉대도호부 관아를 출발점으로 삼으니 길도 단순했다. 관아 주변을 둘러본 뒤 임당동성당 쪽으로 걷고, 다시 명주동 골목으로 들어왔다. 관광지 여러 곳을 찍는 코스라기보다 한 동네를 느슨하게 도는 코스다. 부모님 걸음에 맞춰 걷고 쉬는 시간을 넉넉히 두면 반나절이 훌쩍 간다. 어느 골목에서 오래 머물지는 그날의 기분에 맡겨도 좋았다.
명주동에서는 많이 걷는 것보다 자주 쉬는 게 좋았다
관아의 넓은 공간을 지나 골목으로 들어서면 시야가 갑자기 좁아진다. 담장과 지붕, 가게 문 앞 화분이 눈높이에 가까워진다. 부모님은 새로운 카페보다 오래된 집의 창틀을 더 오래 바라보셨다. 나는 그 속도를 따라가며 사진을 몇 장 찍었다. 걸음이 느려지니 평소라면 지나쳤을 장면이 보였다.
이 일대에는 오래된 건물을 활용한 카페와 문화 공간이 있지만, 모든 곳이 언제나 문을 여는 건 아니다. 특정 가게를 목적지로 정해두면 휴무일에 일정이 흔들릴 수 있다. 우리는 앉을 자리가 보이면 쉬고, 붐비면 다음 골목으로 걸었다. 따뜻한 음료 한 잔을 앞에 두고 쉬는 시간이 길어져도 아깝지 않았다. 효도여행이라고 해서 계속 무언가를 보여드릴 필요는 없었다.
걸을 때는 신발도 중요했다. 골목의 노면과 가게 입구는 한결같이 평평하지 않다. 부모님이 계단이나 턱을 불편해하신다면 들어갈 곳을 현장에서 살피고, 걷는 구간을 짧게 줄이는 편이 낫다. ‘여기까지 왔으니 조금만 더’라는 말이 쌓이면 한적한 여행도 금세 힘든 일정이 된다.
식사는 명소보다 부모님 취향에 맞췄다
점심 메뉴를 고를 때는 사진이 잘 나오는 곳보다 부모님이 편하게 드실 음식을 먼저 물었다. 맵거나 낯선 메뉴를 일부러 넣지 않고, 앉아서 충분히 쉴 수 있는 식당을 찾았다. 특히 점심시간이 지나면 쉬는 가게도 있으니 식사를 너무 늦추지 않는 게 좋다. 우리는 오전에 한 차례 걷고 점심을 먹은 뒤, 오후 골목은 짧게만 둘러봤다.
부모님 효도여행 국내 코스를 짤 때 숙소와 식당의 거리를 먼저 보는 이유도 여기 있다. 멋진 숙소가 멀리 떨어져 있으면 저녁 한 끼를 위해 다시 차를 타야 한다. 명주동처럼 시내 골목을 걷는 날에는 저녁 장소를 가까운 곳으로 잡거나, 부모님이 피곤해하시면 일찍 숙소로 돌아가는 편이 자연스럽다. 여행의 만족감은 들른 장소의 수와 꼭 비례하지 않았다.
한적한 시간을 고르려면 일정을 비워둬야 한다
명주동은 숨은 동네라고만 부르기엔 이미 찾는 사람이 있는 곳이다. 행사나 주말에는 골목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 사람 적은 길을 기대한다면 평일 오전처럼 비교적 여유로운 시간대를 고르고, 방문 전에 강릉시 관광 안내에서 행사 여부를 확인하는 게 낫다. 조용한 골목에서도 집 앞이나 대문 안쪽은 누군가의 생활 공간이니 사진을 찍을 때 한 번 더 살피게 된다.
그날 우리는 명주동을 다 보고도 ‘하나만 더’라는 마음으로 다음 명소를 찾아가지 않았다. 부모님이 다시 이야기한 건 유명한 풍경이 아니라 골목에서 본 작은 화단과 쉬면서 마신 차였다. 멀리 모시고 가야 효도여행이 되는 줄 알았는데, 같은 속도로 걷고 오래 앉아 있는 시간이 두 분께는 더 편안해 보였다. 다음에 강릉에 가더라도 나는 이 동네에서 조금 늦게 출발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