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시 사진을 넘기다가 알록달록한 동물 그림 앞에서 손가락이 멈춘 적이 있어요. 귀여운 장면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 보니 낙서 같은 글씨가 얽혀 있고 표정도 어딘가 묘합니다. 우국원 작품은 이렇게 첫눈에 끌어당긴 뒤 다시 들여다보게 만드는 재미가 있어요. 처음 접했다면 그림 속 이야기를 맞히려 애쓰기보다, 눈에 들어오는 것부터 천천히 따라가면 훨씬 편합니다.
우국원은 어떤 그림을 그리는 작가일까
우국원은 1976년 태어난 한국의 회화 작가입니다. 표갤러리 소개에 따르면 일본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한 뒤, 2009년부터 개인전을 열어 왔어요. 화면에 놓인 글씨와 이미지가 한 장의 포스터처럼 강하게 다가오는 데에는 이런 경력도 떠오릅니다. 다만 실제 작품 앞에서는 인쇄물과 다른 두툼한 물감의 존재감이 먼저 느껴질 수 있어요.
아이, 동물, 동화 속 인물을 만난 듯한 장면이 자주 등장합니다. 색은 밝고 형태는 자유로워서 어린이책의 한 페이지처럼 보이기도 하죠. 그런데 인물들이 놓인 상황이나 그림에 섞인 문장은 꼭 해맑지만은 않습니다. 탕 컨템포러리 아트는 그의 작업을 현실과 환상 사이의 간격, 아름다운 동화에 숨어 있는 잔혹함을 다루는 그림으로 소개합니다. 귀여움과 불편함이 함께 있는 이유를 짐작할 만한 설명이에요.
그렇다고 모든 동물에 고정된 뜻을 붙일 필요는 없습니다. 같은 그림에서도 누군가는 우스운 장면을 먼저 보고, 다른 사람은 쓸쓸한 기분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화면이 내게 어떤 감정을 남기는지부터 확인하는 편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림 속 동물과 글씨를 보는 순서
처음에는 등장인물 사이의 거리를 봅니다. 아이 옆에 동물이 바짝 붙어 있는지,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지, 누가 화면 한가운데를 차지하는지만 살펴도 장면에 이야기가 생겨요. 예를 들어 동물들이 함께 모인 모습은 즐거운 소풍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자세를 하나씩 읽다 보면 긴장감이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 차이가 작품을 오래 보게 만드는 지점이죠.
그다음에는 글씨를 찾습니다. 우국원의 글씨는 또박또박 읽히는 설명문과는 조금 달라요. 표갤러리는 이를 그림처럼 그려진 텍스트라고 표현합니다. 문장을 모두 해독하려고 가까이 다가갔다가, 몇 걸음 물러서서 글씨가 화면에서 차지하는 모양을 보는 식으로 감상해도 좋습니다. 읽히는 단어와 읽히지 않는 선이 함께 그림의 분위기를 만듭니다.
색과 표면도 놓치기 아까워요. 온라인 사진에서는 빨강이나 파랑 같은 큰 색 덩어리가 먼저 보이지만, 실물에서는 겹쳐 올린 물감과 표면의 자국이 시선을 붙잡을 수 있습니다. 작품을 함께 선보인 아방아르트는 작가가 물감이 마르기 전에 연필이나 붓의 뒷부분으로 표면을 긁어 질감을 만든다고 설명해요. 사진에서 좋아 보였던 작품이 실제로는 전혀 다른 이유로 기억에 남을 수도 있습니다.
제목을 알면 장면이 다르게 보인다
그림을 먼저 보고 제목을 나중에 읽는 것도 재미있는 방법입니다. 제목을 보기 전에는 화면 속 아이와 동물의 관계를 마음대로 상상할 수 있거든요. 그 뒤 제목을 확인하면 내가 만든 이야기와 작가가 던진 실마리가 얼마나 다른지 비교하게 됩니다. 답을 맞히는 과정이라기보다 그림과 짧게 대화하는 느낌에 가까워요.
예를 들어 아방아르트가 소개하는 2020년 작품 ‘I Hate Mornings’에는 잠든 아이와 침대보를 잡아당기는 말이 등장합니다. 처음엔 우스운 아침 풍경으로 보이지만, 누구나 겪는 ‘일어나기 싫은 아침’을 떠올리면 장면이 더 친숙해져요. 동화 같은 등장인물이 특별한 사건뿐 아니라 평범한 하루와도 연결된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반대로 제목이 알려 주는 것보다 그림이 더 복잡할 때도 있습니다. 2022년 작품 ‘Carnival’을 떠올리면 신나는 축제를 기대하기 쉽지만, 실제 감상에서는 인물의 표정과 색의 충돌을 함께 보게 되죠. 우국원의 작품을 동화풍 그림 한 종류로 묶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친근한 소재가 관람자를 불러들이고, 화면 안의 어긋남이 조금 더 머물게 합니다.
전시나 작품 사진을 볼 때 기억할 점
실물을 볼 수 있다면 한 작품 앞에서 가까이와 멀리, 두 위치를 오가며 보세요. 멀리서는 장면과 색의 균형이 들어오고, 가까이서는 글씨와 물감 자국이 눈에 띕니다. 전시장에 사람이 많아 오래 서 있기 어렵다면 가장 마음에 걸린 부분 하나만 기억해도 충분해요. 나중에 작품 사진을 다시 볼 때 그 장면부터 눈에 들어옵니다.
온라인에서 작품을 볼 때는 제작 연도와 재료를 함께 확인하면 좋습니다. 같은 작가의 그림이라도 시기와 크기에 따라 화면의 밀도는 다르게 느껴지니까요. 탕 컨템포러리 아트가 소개한 2022년 작품 ‘Lunatic Beauty’는 캔버스에 유채로 그린 162.2×130.3cm 크기의 그림입니다. 휴대전화 화면에서는 한눈에 들어오지만, 실제 크기를 떠올리면 작품 앞에 서서 받는 인상이 달라질 수 있겠죠.
전시를 찾는다면 오래된 안내 글의 일정만 믿지 말고 개최 공간의 최신 공지를 확인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작품을 구매하려는 경우에도 사진의 색감이나 한때의 판매 가격만으로 판단하기는 어려워요. 원화인지 판화인지, 크기와 제작 방식은 무엇인지부터 구분해야 같은 우국원 작품이라도 무엇을 보고 있는지 분명해집니다.
제게 우국원 그림의 매력은 귀여운 캐릭터를 보고 웃었다가 곧바로 다른 감정을 발견하게 되는 데 있습니다. 작품 앞에서 처음 든 생각과 몇 분 뒤의 생각이 다르다면, 그 변화 자체가 꽤 좋은 감상 경험일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