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전세권이 설정된 아파트 등기부를 보는데, 보증금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그 위에 적힌 근저당권이었습니다. 전세권을 설정하는 데 얼마 들었는지는 계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경매 현장에서는 그 돈을 쓰고도 보증금을 얼마나 돌려받을 수 있느냐가 더 큰 문제입니다.
세입자 입장에서 전세권 설정 비용이 궁금한 건 당연합니다. 계약서에 전세권 설정을 넣자고 했더니 임대인이 비용은 세입자가 내라고 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숫자부터 계산하고, 그다음 그 등기가 내 보증금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따져보겠습니다.
보증금 3억 원이면 세금부터 72만 원입니다
전세권 설정 비용에서 가장 큰 부분은 등록면허세입니다. 지방세법상 전세권 설정등기의 등록면허세율은 전세금액의 0.2%입니다. 여기에 등록면허세액의 20%인 지방교육세가 붙습니다. 보증금이 3억 원이라면 등록면허세 60만 원, 지방교육세 12만 원으로 세금 합계가 72만 원입니다.
- 보증금 2억 원: 등록면허세 40만 원, 지방교육세 8만 원
- 보증금 3억 원: 등록면허세 60만 원, 지방교육세 12만 원
- 보증금 5억 원: 등록면허세 100만 원, 지방교육세 20만 원
계산할 때는 보증금에 0.24%를 곱하면 세금 규모를 빠르게 가늠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숫자가 최종 지출액은 아닙니다. 등기신청수수료가 따로 들고, 법무사에게 맡기면 보수와 실비가 더해집니다. 건물과 토지에 각각 등기를 신청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접수하는지에 따라서도 수수료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견적을 받을 때 제가 꼭 보는 건 ‘총액’ 아래의 항목입니다. 세금, 등기신청수수료, 법무사 보수, 서류 발급비가 각각 얼마인지 나눠 적어 달라고 합니다. 보증금 3억 원에 법무사 비용까지 전부 합쳐 72만 원이라고 생각했다가 계약 직전에 돈이 더 필요해지면 괜히 실랑이가 생깁니다. 등기를 맡기기 전에는 납부할 세액과 수수료를 해당 지자체와 등기소 기준으로 다시 확인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누가 낼지는 계약 전에 적어야 편합니다
전세권은 임대인의 협조를 받아 설정등기를 진행하는 권리입니다. 그래서 세입자가 비용을 부담하겠다고 마음먹었더라도 임대인이 필요한 서류와 절차에 협조할 수 있는지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전세권 설정에 동의한다는 말만 듣고 계약금부터 넣으면, 나중에 등기 서류를 준비하는 단계에서 막히기도 합니다.
비용을 임대인과 세입자 중 누가 부담할지는 계약 단계에서 분명히 정하는 게 좋습니다. 실무에서는 세입자가 부담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것이 모든 계약에 자동으로 적용되는 약속은 아닙니다. 특약에는 전세권 설정에 협조할 사람, 등기할 목적물과 전세금액, 비용 부담자, 등기 접수 시점을 구체적으로 적어 두는 편이 낫습니다.
특히 잔금을 보낸 뒤 ‘며칠 있다 등기해 드릴게요’라는 말은 가볍게 듣기 어렵습니다. 등기부의 권리 순서는 날짜 차이로 달라질 수 있습니다. 잔금 지급과 등기 접수 일정을 어떻게 맞출지, 그 사이 새 담보권이 설정될 위험은 없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여기서 생기는 문제는 법무사 보수 몇 만 원을 아끼는 것보다 훨씬 큽니다.
전세권이 있어도 선순위 채권이 먼저 보입니다
경매 물건을 볼 때 등기부에 전세권이 적혀 있으면 초보자는 안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등기가 있으면 보증금은 단단히 묶여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전세권의 순위보다 앞선 근저당권이 있고, 낙찰대금이 그 채권을 갚기에도 빠듯하다면 뒤에 있는 전세권자가 배당에서 충분한 돈을 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시세를 4억 원으로 본 집에 먼저 설정된 근저당권의 실제 채권액이 크고, 전세금 2억 원짜리 전세권이 그다음에 들어갔다고 해보죠. 경매에서 3억 원대에 매각되면 ‘전세권 등기를 했으니 2억 원을 전부 돌려받는다’고 계산할 수 없습니다. 선순위 권리와 집행비용 등을 반영해야 합니다. 근저당권의 채권최고액은 실제 배당받을 채권액과 같지 않으므로, 등기부 숫자 하나만 보고 회수액을 확정하는 것도 위험합니다.
반대로 선순위 전세권이 적힌 경매 물건을 사려는 사람이라면 더 조심해야 합니다. 전세권의 순위, 전세권자가 배당요구를 했는지, 매각으로 그 권리가 소멸하는지에 따라 낙찰자가 감당할 부담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물건에서 등기부만 보고 입찰가를 쓰지 않습니다. 매각물건명세서와 배당요구 내역까지 맞춰 보고, 조금이라도 해석이 갈리면 입찰을 멈춥니다.
확정일자와 전세권은 같은 절차가 아닙니다
주택 세입자는 전세권을 설정하지 않아도 주택을 인도받고 전입신고를 마치면 주택임대차보호법상 대항력을 갖출 수 있습니다. 여기에 임대차계약서의 확정일자를 받아 우선변제 요건을 갖추는 방식도 있습니다. 전세권은 별도 설정등기로 생기는 권리입니다. 둘은 근거와 요건이 다르니 ‘전세권을 했으니까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는 필요 없다’고 단정하면 곤란합니다.
대법원은 주택임차인이 전세권 설정등기를 별도로 마쳤더라도, 주택임대차보호법상 대항요건을 잃으면 그 법에 따른 대항력과 우선변제권도 잃는다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 이사를 가거나 주민등록을 옮겨야 하는 상황이라면 특히 이 부분을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보증금을 못 받은 채 집을 비워야 한다면 임차권등기명령 등 필요한 절차를 따져야 하고요.
전세권 설정 비용은 보증금 3억 원 기준 세금만 72만 원입니다. 적은 돈은 아닙니다. 그래도 제가 계약서 앞에서 더 오래 보는 것은 등기부의 선순위 권리, 집의 실제 거래가격, 잔금일의 등기 일정입니다. 비용 계산은 계약을 준비하는 첫 단계이고, 보증금을 지키는 판단은 그 뒤의 숫자와 순서를 끝까지 확인하는 데서 갈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