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이라는 가장 새로운 도구가 가족과 사랑, 기억, 인간다움이라는 오래된 이야기를 스크린 위에 펼쳐냈다. ‘2026 대한민국 AI 콘텐츠 어워즈’가 2026년 10월 15일부터 16일까지 이틀간 롯데시네마 수원에서 열렸다. 행사에서는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작품 상영과 감독·관객 간 대화, 시상식이 진행됐다.
이번 어워즈는 AI 콘텐츠가 짧은 영상의 실험 단계를 넘어 서사를 갖춘 영화로 확장되는 흐름을 보여줬다. 상영관에서는 기술 자체보다 작품 속 인물과 이야기, 창작자가 던진 질문이 관객의 시선을 이끌었다.
87개국에서 모인 1528편
2026 대한민국 AI 콘텐츠 어워즈에는 87개국·지역에서 모두 1,528편이 출품됐다. 이 가운데 본선에 오른 작품은 20편이다.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지닌 창작자들이 다양한 AI 도구와 표현 방식을 활용해 경쟁을 펼쳤다.
올해는 30분 이상 60분 미만의 작품을 대상으로 하는 중편 경쟁 부문이 새로 마련됐다. 짧은 영상 위주로 성장해 온 AI 콘텐츠가 더 긴 호흡으로 인물과 사건을 전개하는 단계까지 나아갔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구성이다.
작품 한 편을 만드는 데에는 평균 3.9개 이상의 AI 도구가 활용됐다. 하나의 도구만으로 모든 과정을 처리하기보다 여러 기술을 조합해 영상과 이야기를 완성하는 제작 방식이 나타났다. AI 콘텐츠 제작이 단일 기능의 활용을 넘어 여러 도구를 설계하고 연결하는 작업으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출품작들이 다룬 소재는 낯설지 않았다. 가족과 관계, 사랑과 기억, 인간다움처럼 오랫동안 영화가 탐구해 온 주제들이 AI 기술을 통해 새로운 화면과 형식으로 구현됐다.
대형 화면에 오른 AI 영화
현장에서는 오일석 감독의 〈그대가 팔 수 없었던 기억에 대하여〉와 오기형 감독의 〈메아리도 없이〉가 상영됐다. 두 작품은 AI를 활용했다는 공통점을 지녔지만 이야기의 출발점과 제작 방식에서는 차이를 보였다.
대형 스크린에 펼쳐진 장면들은 전반적으로 자연스러운 흐름을 이어갔다. 일부 글자와 간판 등 화면 속 텍스트에서는 AI 콘텐츠의 특징이 드러났지만, 상영이 진행될수록 관객의 관심은 제작 기술보다 작품이 전하는 기억과 인간에 관한 질문으로 옮겨갔다.
AI로 만든 영상이라는 사실은 작품의 출발점이었지만, 상영 뒤에 남은 핵심은 기술의 이름이 아니라 이야기였다. 두 작품은 AI 영화도 인물과 서사를 통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고 생각할 거리를 전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감독들이 밝힌 제작 과정
상영 후에는 송경원 씨네21 편집장의 진행으로 오일석·오기형 감독이 참여한 GV가 이어졌다. 두 감독은 작품의 배경과 제작 과정에서 마주한 가능성, AI 활용 과정에서 확인한 한계를 관객에게 설명했다.
〈그대가 팔 수 없었던 기억에 대하여〉는 오일석 감독이 쓴 단편소설과 가족에 관한 기억에서 출발했다. 오 감독은 현실적인 제작 여건으로 구현하기 어려웠던 이야기를 AI를 이용해 시각화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머릿속에 머물던 장면을 영화의 형태로 옮길 수 있다는 점이 AI가 제공한 가능성으로 제시됐다.
화가인 오기형 감독은 〈메아리도 없이〉에 자신이 직접 그린 그림을 활용했다. 다만 제작 과정이 단순했던 것은 아니다. 장면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한 장면을 수십 차례 수정하는 작업도 거쳤다. 이는 AI가 결과물을 자동으로 완성하는 수단이라기보다 창작자의 반복적인 선택과 조정이 필요한 도구임을 보여준다.
두 감독의 작업은 AI가 창작자의 이야기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와 서사를 작품으로 구현할 수 있도록 선택지를 넓혀주는 도구라는 점을 드러냈다. 어떤 장면을 만들고 어떤 이야기를 관객에게 전할지는 여전히 창작자의 판단에 달려 있었다.
부문별 수상작 발표
시상식에서는 백남준 특별상과 단편 경쟁, 중편 경쟁 부문의 수상 결과가 공개됐다. 부문별 수상작은 다음과 같다.
| 부문 | 순위 | 수상작 |
|---|---|---|
| 백남준 특별상 | 1등 | 〈스틸 샌딩〉 |
| 백남준 특별상 | 2등 | 〈토끼가 이르기를〉 |
| 단편 경쟁 | 1등 | 〈엄마 눈에만 예쁜 얼굴〉 |
| 단편 경쟁 | 2등 | 〈올리브나무 아래서〉, 〈드니프로강 이야기〉 |
| 단편 경쟁 | 3등 | 〈뉴먼〉, 〈칩타이드〉, 〈고양이의 일생〉 |
| 중편 경쟁 | 1등 | 〈로이 온 더 로드〉 |
| 중편 경쟁 | 2등 | 〈49일의 환생여행〉 |
| 중편 경쟁 | 3등 | 〈배짱〉 |
수상자들의 배경도 다양했다. 영화 전공자에 한정되지 않고 직장인과 목수, 화가 등 서로 다른 분야에서 활동해 온 사람들이 AI를 활용해 자신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표현했다. AI 기술이 기존에 영화를 제작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도 창작의 가능성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 수상 무대에서 구체적으로 확인됐다.
공동 창작자로 소개된 AI
중편 경쟁 1위를 차지한 〈로이 온 더 로드〉는 인간이 되고 싶은 로봇을 통해 인간과 사랑의 의미를 묻는 작품이다. 창작자는 약 6개월 동안 이 이야기를 발전시켰으며 수상소감에서 챗GPT를 공동 창작자로 소개했다.
이어 공동 창작자로 소개된 챗GPT가 직접 말하는 형식의 수상소감도 연출됐다. 창작자에게 술과 담배를 줄이고 건강을 챙기라는 내용이 나오자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졌다. AI가 제작 과정에 활용되는 데 그치지 않고 공동 창작자로 호명돼 무대의 한 장면을 구성한 사례였다.
이 장면은 인간과 AI가 창작 과정에서 맺는 관계가 빠르게 달라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다만 작품의 주제와 방향을 정하고 결과물을 선택해 하나의 영화로 완성하는 중심에는 창작자가 있었다.
낮아지는 영화 창작의 문턱
본선 진출작 20편은 AI 기술이 영상 제작의 진입 장벽을 낮출 가능성을 보여줬다. 영화 제작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도 자신이 지닌 경험과 이야기를 새로운 기술과 결합해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할 수 있었다.
현장에 공개된 작품들은 사용한 도구와 영상 표현 방식이 모두 달랐다. 그러나 작품 안에서 다룬 질문은 서로 맞닿아 있었다. 가족과 관계는 어떻게 기억되는지, 사랑은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지, 인간다움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와 같은 주제가 여러 작품을 관통했다.
행사의 주제는 ‘ART-i-fi-cial, SEE WHAT’S BETWEEN 그 너머로의 확장’이었다. 출품 규모와 중편 부문의 신설, 다양한 직업을 가진 창작자들의 참여는 AI 콘텐츠가 표현 영역과 제작 주체를 넓혀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중요한 질문은 AI로 무엇을 만들 수 있는지에만 머물지 않는다. AI를 이용해 어떤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를 관객에게 어떻게 전할 것인지가 작품의 가치를 가르는 핵심으로 떠올랐다.
10월 28일까지 이어지는 상영
2026 대한민국 AI 콘텐츠 어워즈 본선 진출작 20편은 2026년 10월 28일까지 서울·경기권 롯데시네마 31개 관에서 상영된다. 관객들은 극장 상영을 통해 AI 콘텐츠의 현재와 장편 서사로 확장되는 창작 흐름을 확인할 수 있다.
AI 도구가 발전하면 영상의 자연스러움과 표현 범위도 넓어질 수 있다. 이번 어워즈의 작품과 제작 과정은 기술만으로 영화가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창작자가 무엇을 선택하고 어떤 질문을 담느냐가 중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줬다. 가장 새로운 도구를 손에 쥔 사람들이 가장 오래된 인간의 이야기를 다시 영화로 만들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