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경매 물건 서류를 보는데 임차인 계약기간이 1년으로 적혀 있었습니다. 그 날짜만 보면 이미 계약이 끝난 집이었죠. 그런데 현장에서는 임차인이 계속 살고 있었고, 보증금도 돌려받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이런 물건 앞에서 계약서의 종료일 하나만 믿고 명도 일정을 잡으면 계산이 틀어집니다. 제가 입찰을 접은 이유도 그 날짜보다 먼저 확인할 게 많았기 때문입니다.
1년 계약이라도 임대인이 1년 뒤 퇴거를 요구할 수는 없다
주택임대차보호법 4조 1항은 기간을 정하지 않았거나 2년 미만으로 정한 주택 임대차를 2년으로 봅니다. 다만 임차인은 약속한 짧은 기간이 유효하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1년 계약서를 썼다면 임대인은 1년이 지났다는 이유만으로 임차인을 내보낼 수 없지만, 임차인은 1년 계약기간을 기준으로 임대차가 끝났다고 주장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어느 쪽이 그 기간을 주장하는지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2024년 3월 1일부터 2025년 2월 28일까지 계약한 세입자가 있다고 해보죠. 집주인이 2025년 3월 1일에 계약이 끝났다며 집을 비워 달라고 해도, 세입자는 2년의 보호기간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세입자가 약정한 1년의 만료를 주장하며 보증금 반환을 요구하는 길도 열려 있습니다. 계약서에 적힌 1년을 임대인과 임차인에게 똑같은 퇴거 시점으로 적용하면 안 되는 이유입니다.
경매 서류에는 이런 사정이 한 줄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매각물건명세서의 임대차기간을 읽고 ‘만료’라고 표시해 뒀다가, 현장에서 임차인의 이야기를 듣고 다시 계산한 적이 여러 번 있습니다. 계약서 날짜는 출발점이지, 점유자를 언제 내보낼 수 있는지 알려 주는 답은 아닙니다.
보증금을 못 받았다면 만료일 뒤에도 관계가 이어진다
주택임대차보호법 4조 2항에는 더 중요한 문장이 있습니다. 임대차기간이 끝나도 임차인이 보증금을 돌려받을 때까지 임대차관계가 존속되는 것으로 본다는 내용입니다. 가령 계약이 작년에 끝났어도 보증금 1억 2천만 원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면, 계약 종료일만 보고 ‘이제 아무 권리도 없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4조만 읽고 낙찰자가 모든 보증금을 떠안는다고 계산해서도 안 됩니다. 경매에서 임차권이 매각 후에도 남는지는 대항력과 배당 결과를 함께 봐야 합니다. 주택임대차보호법 3조의5는 경매로 임차권이 소멸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면서, 보증금을 모두 변제받지 못한 대항력 있는 임차권은 예외로 둡니다. 기간이 남았는지, 보증금이 남았는지, 그 임차권을 낙찰자에게 주장할 수 있는지는 서로 다른 질문입니다.
명도에서도 이 차이가 큽니다. 서류상 계약기간이 끝났다고 곧바로 인도명령이 순조롭게 진행될 거라 예상하면 위험합니다. 임차인이 낙찰자에게 대항할 수 있고 보증금도 남아 있다면 인도 시점과 필요한 자금부터 다시 따져야 합니다. 반대로 대항력이 없는 임차인에게 4조 2항만을 근거로 낙찰자에게 보증금 전액을 청구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도 맞지 않습니다.
입찰표 쓰기 전에 날짜 네 개를 한 줄에 놓는다
저는 임차인이 있는 집이면 계약 시작일과 종료일, 실제 입주일과 전입신고일, 확정일자, 선순위 권리의 등기일을 나란히 적습니다. 특히 전입신고일 하나만으로 대항력 취득 시점을 확정하지 않습니다. 주택의 인도와 주민등록을 갖췄는지, 그 효력이 언제 생겼는지를 함께 확인해야 합니다. 그다음 배당요구 여부와 보증금 액수, 예상 배당액을 붙입니다. 숫자를 따로 보면 쉬워 보여도 한 줄에 놓으면 놓친 순서가 보입니다.
가령 보증금 1억 2천만 원인 임차인이 선순위로 대항력을 갖춘 집을 2억 원에 낙찰받는다고 가정해 봅시다. 임차인이 배당에서 7천만 원만 받는다면, 남은 5천만 원을 어떻게 처리할지 검토해야 합니다. 입찰가 2억 원만 적고 수익을 계산하면 이 돈이 통째로 빠집니다. 취득세, 잔금대출 이자, 체납 관리비 중 부담할 부분, 수리비와 점유 해소에 드는 시간도 따로 계산해야 합니다. 실제 부담액은 권리 순위와 배당 결과에 따라 달라지므로 이 숫자는 계산 방식을 보여 주는 가정일 뿐입니다.
서류끼리 내용이 다를 때는 입찰을 서두르지 않습니다. 현황조사서에는 ‘임차인 불명’인데 전입세대가 확인되거나, 매각물건명세서의 보증금과 임차인이 말하는 액수가 다르면 더 그렇습니다. 등기사항증명서, 매각물건명세서, 현황조사서와 배당 관련 기록을 다시 맞춰 봅니다. 현장 방문에서 확인한 말도 기록하되, 그것만으로 권리 순위를 확정하지는 않습니다.
기간이 짧다는 이유로 쉬운 물건이 되지는 않는다
초보 때는 계약서에 ‘1년’이라고 쓰인 집이 오히려 편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4조를 알고 나면 그 숫자만으로 명도 날짜를 정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됩니다. 임차인이 짧은 기간을 주장하는지, 보증금을 받았는지, 경매에서 살아남는 대항력이 있는지까지 확인해야 비로소 입찰가를 적을 수 있습니다.
제게 경매는 싸게 사는 기술보다 빠진 돈을 찾아내는 일에 가깝습니다. 1년 계약서를 보고도 계산표에 보증금 반환 가능액을 남겨 두는 쪽이 마음은 불편합니다. 그래도 입찰장에서는 그 불편함이 손실을 막아 준 적이 많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