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지인이 SSD를 사려다가 제품 이름보다 숫자가 더 많다며 화면을 보여줬다. 읽기 속도 7,000MB/s, PCIe 4.0, M.2 2280 같은 표시가 빼곡했다. 그런데 막상 고르는 순서는 단순하다. 내 컴퓨터에 들어가는 규격을 확인하고, 저장할 파일의 양과 쓰는 방식을 생각하면 후보가 꽤 줄어든다.
먼저 내 컴퓨터에 들어가는 규격부터
SSD 추천을 받기 전에 가장 먼저 볼 것은 속도가 아니라 연결 방식이다. 데스크톱이나 노트북에 M.2 슬롯이 있다면 길이 80mm인 ‘M.2 2280 NVMe’ 제품을 쓸 수 있는지 확인하자. 같은 M.2 모양이라도 SATA 방식과 NVMe 방식은 다르다. 슬롯 옆 표기나 컴퓨터 제조사의 제품 설명에서 지원 규격을 확인하는 게 안전하다.
오래된 PC라 M.2 슬롯이 없고 2.5인치 드라이브 공간과 SATA 연결만 있다면 2.5인치 SATA SSD가 맞는다. 이 경우 삼성 870 EVO 같은 제품이 후보가 된다. 삼성전자 제품 안내에 표시된 최대 순차 읽기 속도는 560MB/s다. 숫자만 보면 최신 NVMe 제품보다 느리지만, 하드디스크에서 바꾸는 경우라면 부팅이나 프로그램 실행에서 체감 차이가 크다.
노트북은 한 번 더 살펴봐야 한다. 바닥판을 열 수 있어도 빈 슬롯이 없을 수 있고, 기존 SSD를 빼고 교체해야 할 수도 있다. 얇은 노트북은 SSD 위에 높은 방열판을 얹을 공간도 부족하다. 제품명 검색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면 제조사 안내에서 슬롯 개수, 지원 길이, 교체 가능 여부를 먼저 확인하자.
용도별로 고르면 후보가 줄어든다
문서 작업, 웹서핑, 사진 보관이 중심이라면 PCIe 4.0 NVMe 1TB가 무난한 출발점이다. 예를 들어 삼성 990 EVO Plus 1TB는 M.2 2280 제품이고, 제조사 기준 최대 순차 읽기 속도가 7,150MB/s다. 일상적인 작업에 꼭 이 속도가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운영체제와 앱을 설치하고 파일을 넉넉히 담을 수 있는 선택지다. 비슷한 조건의 제품끼리는 가격과 보증 기간까지 함께 보면 된다.
게임을 여러 개 설치한다면 속도보다 2TB 용량이 먼저 아쉬워지는 경우가 많다. 게임 하나가 100GB 안팎인 경우도 있어서 1TB는 운영체제와 다른 파일을 넣고 나면 예상보다 빨리 찬다. 같은 예산이라면 가장 빠른 1TB와 적당히 빠른 2TB를 비교해 볼 만하다. 게임 로딩은 저장장치 외에도 게임 설계와 컴퓨터 성능의 영향을 받으니, 광고 속 순차 읽기 숫자 차이가 그대로 체감 차이가 되지는 않는다.
큰 영상 파일을 자주 옮기거나 편집한다면 크루셜 T500 2TB나 삼성 990 PRO 2TB 같은 고성능 PCIe 4.0 제품이 후보가 된다. 제조사 자료에 나온 최대 순차 읽기 속도는 각각 7,400MB/s와 7,450MB/s 수준이다. 다만 파일을 오래 연속으로 쓰는 작업에서는 최고 속도 한 줄만 보고 고르기 어렵다. 작업 파일이 차지할 공간, 냉각 환경, 실제 판매 가격을 함께 따져야 한다.
용량과 속도는 이렇게 비교하면 편하다
500GB는 문서 위주 보조 저장장치로는 쓸 만하지만, 새 PC의 주 저장장치라면 1TB부터 생각하는 편이 여유롭다. 사진과 영상이 많거나 게임을 자주 설치한다면 2TB가 편하다. 예를 들어 100GB짜리 게임 다섯 개만 설치해도 표시 용량 기준으로 500GB를 차지한다. 여기에 운영체제, 업데이트 파일, 개인 파일까지 더하면 공간이 금방 줄어든다.
제품 설명의 ‘최대 7,000MB/s’는 주로 큰 파일을 연속해서 읽을 때의 수치다. 작은 파일이 섞인 일상 작업이나 게임 실행 속도를 하나의 숫자로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 PCIe 5.0 제품이 더 높은 수치를 보여주더라도, 현재 쓰는 컴퓨터가 지원하는지와 추가 비용만큼 이득을 볼 작업이 있는지를 먼저 생각하는 편이 낫다. PCIe 4.0 슬롯에 상위 규격 제품을 꽂아도 슬롯이 지원하는 속도 범위를 넘어설 수는 없다.
내구성을 비교할 때는 TBW라는 수치도 볼 수 있다. 보증 조건에 쓰이는 누적 기록량으로, 같은 용량의 제품을 비교할 때 참고할 만하다. 그렇다고 TBW가 높은 제품 하나만 믿고 중요한 파일을 한 곳에 보관해서는 곤란하다. SSD도 고장 날 수 있으니 사진이나 작업물은 별도 저장장치나 백업 공간에 복사해 두는 습관이 더 든든하다.
주문 전에 놓치기 쉬운 부분
플레이스테이션 5에 넣을 SSD라면 PC용으로 좋다는 말만 보고 주문하면 안 된다. 소니 안내 기준으로 PCIe 4.0 x4 M.2 NVMe를 지원하며, 순차 읽기 속도 5,500MB/s 이상을 권장한다. 방열 구조도 필요하고, 방열판을 포함한 전체 크기가 장착 공간에 맞아야 한다. 삼성 990 PRO 방열판 장착형처럼 콘솔 호환 여부를 표시한 제품도 있지만, 구매하려는 정확한 용량과 모델의 규격을 다시 확인하는 게 좋다.
데스크톱은 메인보드에 기본 방열판이 달린 경우가 있다. 이때 방열판이 붙은 SSD를 사면 서로 겹쳐 장착이 불편할 수 있다. 반대로 냉각 구조가 없는 공간에 고성능 SSD를 넣는다면 발열 관리도 고려해야 한다. 같은 이름의 제품이라도 방열판 유무에 따라 가격과 높이가 달라진다.
결국 내가 지인에게 권한 방식은 제품 하나를 찍어 주는 것이 아니었다. 슬롯 규격을 확인한 뒤, 평소에는 1TB부터, 게임과 큰 파일이 많으면 2TB부터 가격을 비교하자는 이야기였다. 속도 숫자에 시선이 먼저 가더라도, 오래 만족하며 쓰게 만드는 건 내 컴퓨터에 맞는 규격과 넉넉한 용량인 경우가 많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