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아프리카공화국전이 끝나고도 한동안 경기 화면을 꺼두지 못했다. 체코를 잡으며 시작한 월드컵이 두 경기 만에 뒤집혔고, 손흥민이 팬들의 고통을 언급한 글을 읽고 나니 마지막 1대0 패배가 더 무겁게 느껴졌다. 대체 어디서 흐름이 끊겼을까. 경기 결과와 기록을 다시 펼쳐봤다.
사과문에서 먼저 보인 것은 팬의 시간이었다
손흥민은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 뒤 자신의 사회관계망에 긴 글을 남겼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경기를 봤다면 자신도 슬프고 답답했을 것이라며, 팬들의 실망과 아픔을 사과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렵다고 했다. 메이저리그사커가 전한 글에서도 자신보다 더 큰 상처를 받았을 팬들을 생각하면 자기 감정을 꺼내기조차 조심스럽다는 마음이 드러난다.
내게는 그 대목이 오래 남았다. 팬은 경기 시작 전부터 시간을 비워두고, 한 번의 슈팅에 기대를 걸고, 패배한 뒤에도 장면을 되짚는다. 손흥민은 그 시간이 헛되게 느껴졌을 마음까지 의식한 듯했다. 선수에게도 소중한 월드컵이었겠지만, 글의 시선은 자신의 아쉬움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는 선수들에게 지나치게 상처를 주는 비난 대신 응원을 보내 달라고도 부탁했다. 패배를 받아들이는 일과 한 선수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는 일은 다르다. 이 말이 그래서 단순한 감정 표현보다 주장으로서의 메시지에 가깝게 들렸다.
체코전 승리 뒤 180분 동안 달라진 숫자
국제축구연맹 기록에서 한국의 A조 성적은 1승 2패, 2득점 3실점이다. 체코와의 첫 경기에서 2대1로 역전승했지만 멕시코와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연달아 0대1로 졌다. 승점은 3점. 첫 경기에서 넣은 두 골이 대회 전체 득점이 됐다.
- 체코전 2대1 승리: 먼저 실점한 뒤 두 골로 흐름을 바꿨다.
- 멕시코전 0대1 패배: 후반 5분 루이스 로모에게 결승골을 내줬다.
- 남아프리카공화국전 0대1 패배: 마지막 경기에서도 득점하지 못했다.
두 번의 0대1은 얼핏 한 골 차 접전처럼 보인다. 그런데 기록을 이어 놓으면 다른 모습이 나온다. 180분 동안 상대 골문을 열지 못했고, 실점 뒤 경기를 되돌릴 골도 없었다. 체코전에서는 뒤집었던 스코어를 이후 두 경기에서는 뒤집지 못했다. 한 경기씩 볼 때와 세 경기를 한 줄로 놓고 볼 때의 인상이 이렇게 다르다.
남아공전 직후 이한범은 국제축구연맹 인터뷰에서 점유율이 높아도 실점하면 질 수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공을 오래 갖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았다는 선수의 체감이 담겨 있다. 점유한 시간을 실제 득점 기회와 골로 바꾸는 과정이 끊기면, 한 골 실점의 부담은 훨씬 커진다.
슈팅 32개와 두 골 사이의 거리
국제축구연맹 팀 통계에는 한국의 슈팅이 32개, 유효 슈팅이 11개, 기대득점이 3.38골로 기록돼 있다. 실제 득점은 2골이다. 기대득점은 슈팅 위치와 상황을 바탕으로 기회의 질을 추정한 값이니, 3.38골을 반드시 넣었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래도 세 경기에서 만든 기회가 결과로 얼마나 이어졌는지 가늠하는 데는 쓸 만하다.
슈팅 32개를 세 경기로 나누면 경기당 약 10.7개다. 시도 자체가 없었던 대회는 아니었다. 문제는 득점이 첫 경기 두 골에 몰렸다는 점이다. 멕시코전과 남아공전에서는 슈팅을 기록하고도 스코어판을 바꾸지 못했다. 골이 급해질수록 공격수 한 명의 결정력만 떠올리기 쉽지만, 어떤 위치에서 공을 받고 누가 다음 선택지를 만들어줬는지도 함께 봐야 한다.
손흥민에게 기대가 집중되는 건 자연스럽다. 다만 상대가 그를 경계하는 상황에서 팀 전체가 기회를 만들어내고 끝내는 일까지 혼자 맡길 수는 없다. 기대득점과 실제 득점의 차이를 특정 선수의 책임으로 곧장 옮기기 어려운 이유다. 이 숫자는 오히려 공격의 연결과 마무리를 함께 돌아보게 한다.
손흥민의 말이 다시 보게 한 장면
손흥민의 월드컵 기억에는 극적인 순간도 있다. 2018년 독일전에서는 경기 막판 골을 넣었고, 2022년 포르투갈전에서는 황희찬의 결승골을 도왔다. 이번에는 체코전 승리로 출발하고도 조별리그에서 멈췄다. 같은 선수의 네 번째 월드컵이라고 해도, 주변의 경기 흐름과 팀이 얻은 결과는 매번 달랐다.
그래서 이번 발언을 들을 때마다 남아공전 종료 장면만 떠올리기보다 세 경기의 궤적을 다시 보게 된다. 첫 승리의 기세를 이어가지 못한 2연패, 32개의 슈팅 끝에 남은 두 골, 그리고 그 경기를 지켜본 사람들의 시간. 손흥민의 사과는 그 숫자들을 지우지 않는다. 오히려 다음에는 기회를 어떻게 골로 바꿀지 더 구체적으로 묻게 만든다. 팬으로서도 그 질문을 오래 붙잡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