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주천희의 아시안게임 기록을 다시 보다가 여자 단식 8강 스코어에서 한참 눈을 떼지 못했다. 쑨잉사에게 2대4로 졌다는 결과만 보면 평범한 패배처럼 보인다. 그런데 먼저 세 게임을 내준 뒤 두 게임을 연달아 가져왔다. 주천희 프로필을 읽을 때도 이런 흐름을 함께 봐야 선수가 제대로 보인다.
산둥에서 출발해 삼성생명 유니폼을 입기까지
주천희는 2002년 1월 20일 중국 산둥성에서 태어났다. 일본 T리그 공식 프로필에는 키 164cm, 오른손 셰이크핸드 드라이브형 선수로 등록돼 있다. 국내에서는 삼성생명 소속으로 뛰고, 일본 T리그에서는 2025년부터 일본생명 레드엘프 유니폼을 입었다. 국내 실업팀과 일본 리그 경력을 혼동하기 쉬운 대목이다.
2018년 삼성생명에 합류한 뒤 2020년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다만 국적 취득과 국제대회 국가대표 출전 자격은 같은 문제가 아니었다. 국제탁구연맹의 귀화 선수 관련 규정 때문에 2024년 파리 올림픽과 2025년 도하 세계선수권에는 대표 선수로 나설 수 없었다. 기량은 국제무대에서 통했지만, 태극마크를 달고 큰 대회에 서기까지 시간이 더 필요했던 셈이다.
24승 6패가 보여준 국내 무대의 힘
기다리는 동안 주천희는 경기로 존재감을 쌓았다. 2023년 한국프로탁구리그에서 24승 6패를 기록해 다승왕에 올랐고, 삼성생명의 우승에도 힘을 보탰다. 승률로 계산하면 80%다. 한두 경기의 이변이 아니라 시즌 내내 상대를 꾸준히 눌렀다는 뜻이라 더 눈길이 간다.
2026년 1월에는 전국남녀종합탁구선수권 여자 단식에서 처음 정상에 올랐다. 여자 복식까지 우승해 대회 2관왕이었다. 앞선 대회에서 복식 두 종목을 제패한 적은 있었지만 단식 우승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복식에서는 파트너와 호흡을 맞추고, 단식에서는 매 점을 혼자 풀어야 한다. 두 성적을 나란히 놓으면 주천희가 국내 무대에서 보여준 폭이 읽힌다.
세계 무대에서는 승리의 깊이가 달라진다
국제탁구연맹 기록상 주천희의 여자 단식 최고 세계랭킹은 2024년 14위다. 세계 정상권을 상대할 기회가 꾸준히 생기는 위치지만, 랭킹 한 자리 선수들과의 격차도 직접 확인해야 하는 자리다. 2025년 차이나 스매시 8강, 몽펠리에 챔피언스 4강, 홍콩 파이널스 8강 진출은 그가 큰 대회에서도 몇 경기를 연속으로 이길 수 있음을 보여줬다.
2026년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은 주천희가 국가대표로 출전한 첫 메이저 대회였다. 여자 단체전에서는 한국이 동메달을 땄지만, 준결승 일본전에서 주천희는 하리모토 미와에게 0대3으로 졌다. 세 게임 점수는 7대11, 8대11, 9대11. 점수 차가 조금씩 줄었다는 사실만으로 우세를 주장할 수는 없다. 다만 강한 상대에게 어떤 구간에서 랠리를 길게 가져갔는지 다시 보고 싶게 만드는 기록이다.
여자 단식 8강에서는 쑨잉사에게 9대11, 12대14, 3대11로 밀려 0대3이 됐다. 이후 11대7, 13대11로 두 게임을 되찾았지만 여섯 번째 게임을 8대11로 내줬다. 2대4 패배다. 특히 두 번째 게임을 듀스 끝에 놓친 뒤 세 번째 게임까지 크게 밀린 흐름, 그리고 거기서 다시 반격한 흐름이 함께 남는다. 세계 최상위 선수에게 한 경기 내내 주도권을 쥐었다고 말할 수는 없어도, 쉽게 경기를 끝내게 두지는 않았다.
신유빈과의 복식이 남긴 숙제
신유빈과 짝을 이룬 여자 복식에서는 아시안게임 8강에서 태국의 수타시니 사웨타붓·오라완 파라낭 조에 2대3으로 졌다. 한국 조는 첫 게임을 내준 뒤 11대9, 11대7로 두 게임을 가져와 앞섰다. 하지만 네 번째 게임을 4대11로 잃었고 마지막 게임도 듀스 끝에 10대12로 내줬다. 앞서던 경기를 마무리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큰 스코어다.
단식의 역전 추격과 복식의 역전패를 함께 놓으면 주천희의 현재 위치가 더 선명해진다. 국내에서 쌓은 높은 승률과 국제대회 8강권 성적은 이미 확인됐다. 이제 관심이 가는 건 강호와 맞붙었을 때 한두 게임의 반격을 경기 전체의 승리로 이어갈 수 있느냐다. 주천희의 다음 경기를 볼 때는 최종 스코어 옆에 적힌 듀스와 연속 실점 구간부터 찾아보게 될 것 같다.
